매년 4월은 과학의 달로 불린다. 어린 시절 이 시기에 고무동력기를 만들고 과학 상상도를 그리고 에어로켓을 날려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과학 행사도 많고 이것저것 자잘한 대회도 많아 나름 흥미롭게 보내는 시기여서 이때 ‘과학’에 흥미를 느꼈던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을 지나 어른이 되고 나서 느끼는 ‘과학’은 좀 더 어렵고 전문적이며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인식이 더 커지게 되곤 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과학 연구는 연구실에서 숙련된 연구자들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기 위해 긴 시간을 투자한 것이 지금 전 세계의 연구자들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어린 시절 보았던 그 과학의 조각은 작은 추억으로만 남겨야 하는 것일까.

사실 오랜 과거에는 과학자라는 직업도 특별히 없었을뿐더러 과학을 하는 것에 특별한 제약이 있지도 않았다. 실제로 1800년대 후반 별의 분광형 연구 및 사진술의 개척자였던 헨리 드레이퍼의 원래 직업은 의사였으며 1758년 핼리 혜성을 발견한 게오르크 팔리치의 직업은 농부였다. 이들은 학교에서 천문학을 배운 적은 없지만 자신만의 업적을 만들어 천문학사에 이름을 남겼다.


같은 맥락으로 별 관측에 관한 업적 역시 아마추어 천문학자들이 쌓은 경우가 많다. 1911년에 만들어진 AAVSO(American Association of Variable Star Observers : 미국 변광성 관측자 협회)는 여러 아마추어 천문학자들이 변광성 관측을 통해 얻은 자료를 모으는 기능을 한다. 오랜 기간 변화한 데이터를 얻어야 연구가 가능한 변광성 분야에서 AAVSO의 기여는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 현재까지도 왕성하게 활동 중인 이 단체는 현재 3,400만 개 이상의 변광성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1800년대 후반부터 이어진 하버드 천문대의 별 분류 체계 확립 역시 천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에 의한 연구가 아니었다. 에드워드 피커링이 만든 연구실을 가득 채운 것은 여성 자원봉사자들이었다. 그 유명한 헨리에타 리비트, 애니 점프 캐넌 등은 지금이야 뛰어난 여성 천문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대학에서 천문학만 전공하지도 않았다.) 당시에는 피커링, 섀플리, 허블 등 당대 다른 천문학자들 만큼 인정받지는 못했다.
자 이처럼 꼭 과학을 전공하지 않더라도 천문학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컴퓨터가 발달하면서부터 더 적극적인 참여 방식이 발명되곤 했다.
SETI@HOME 프로젝트
SETI 프로젝트는 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의 약자로 전파를 통해 외계 지적 생명체를 찾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계획만 가지고 있다가 1960년, 오즈마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프랭크 드레이크 박사가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규모가 점차 커져갔다. 저명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도 참여한 이 프로젝트는 NASA의 도움을 받아 계속 진행되었지만 뚜렷한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이 연구를 이어가기에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점이었다. 수신 받은 전파를 분석해야 하는 서버를 개설하는 것이 어려웠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것이 SETI@HOME 이었다.

1995년 공개된 이 소프트웨어는 분산컴퓨팅 기술을 이용하여 수신된 전파를 분석하는 방식을 가지고 있다. 인터넷에 연결된 여러 컴퓨터의 프로세서를 일부 사용하여 연구 분석에 사용하는 것으로 SETI@HOME 말고도 여러 분야에서 사용되는 프로젝트였다. 실제로 1996년에는 GIMPS(Great Internet Mersenne Prime Search) 소프트웨어로 메르센 소수를 검색하는 연구가 진행되었으며 현재까지 18개의 메르센 소수를 발견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SETI 프로젝트는 2020년까지 260만 대가 넘는 컴퓨터가 참여했다. 당대 슈퍼컴퓨터의 두 배 수준의 능력을 보이며 여러 데이터 처리를 진행했으나 안타깝게도 2020년을 끝으로 프로젝트가 막을 내렸다. 비록 끝내 외계 지적 생명체의 신호를 받지는 못했지만 이후 브레이크스루 리슨이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러시아 억만장자 유리 밀러에 지원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아직까지도 전파를 통한 전천 탐사는 이어지고 있다. 또한 분산컴퓨팅 기술을 이용한 민간 과학 참여 역시 수학, 의학 등 여러 분야에서 이용되고 있다. Rosetta@HOME(에이즈 치료제를 만들기 위한 단백질 구조 분석), Folding@HOME(단백질 역학 시뮬레이션 분석) 등이 대표적인 예시라 할 수 있다.
Galaxy Zoo 프로젝트
앞서 소개한 SETI@HOME 프로젝트는 민간 참여가 맞기는 하지만 사실상 컴퓨터의 기능 일부를 대여해 주는 것이므로 적극적 참여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 반면 Galaxy Zoo 프로젝트는 쫌 더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하는 방식이다. 이 연구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눈을 직접 써야 한다.
천문 관측 기기가 발달하면서 한 번에 찍히는 데이터의 개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러니 사진 속 은하의 숫자가 엄청나게 많아졌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이제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여러 자원봉사자들을 통해 별을 분류했던 수준을 뛰어넘었다. 대학원생의 숫자로는 버거운 자료의 양이었다. 옥스퍼드 대의 천체물리학자였던 케빈 샤윈스키(당시에는 학생이었다.)와 크리스 린톳은 방대한 양의 자료 처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반 시민들의 힘을 요청하기로 했다. 그렇게 사진 속 은하를 분류하는 시민 참여 프로젝트 Galaxy Zoo가 2007년 시작되었다.

여러 사람들에게 이미지를 보여주고 분류하는 작업을 하는 방식은 Galaxy Zoo 이전에도 있었다. 2006년 NASA는 Stardust@Home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스타더스트 탐사선이 수집한 성간 먼지에서 충돌 흔적을 찾아내야 했다. 이를 위해 여러 사진을 지원자들에게 보내 직접 확인하도록 한 것이다. 이전의 분산컴퓨팅 프로젝트와 달리 컴퓨터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지원자의 직접 참여를 원하는 방식이었다. 지원자들은 특정 성간 먼지 입자를 발견하여 이름을 붙이는 특전을 얻기도 했다. 실제로 샤윈스키와 린톳은 이 프로젝트에서 영감을 받아 Galaxy Zoo를 준비했다고 한다.

2007년 시작된 프로젝트는 SDSS(Sloan Digital Sky Survey)에서 촬영한 100만 여개의 은하를 분류하는 것이었다. 대학원생이 5년 가까이 매달려야 완료할 수 있는 방대한 양의 은하가 10만 명 이상의 참여를 통해 2년 정도의 시간에 완료되었다. 첫 프로젝트가 완료되었어도 우주를 바라보는 카메라에서 던져지는 사진의 홍수는 끝나지 않았다. 현재까지도 Galaxy Zoo는 은하 분류 작업을 이어오고 있으며 관련 논문만 80편이 넘게 발표되었다.
이 프로젝트의 성공에 힘입어 여러 종류의 시민 참여 과학 프로젝트를 모아 주니버스(zooniverse)라는 포털 사이트가 생겼다. 이곳에서는 은하를 분류하는 Galaxy Zoo 뿐 아니라 제 9행성 찾기(Backyard worlds: PLANET 9), 흑점 관찰(SUNSPOT DETECTIVES) 같은 다른 천문학 분야, 세렝게티의 카메라에 찍힌 사진 속에서 야생동물을 분류하는 Snapshot Serengeti, 태풍 사진을 보고 강도와 유형을 구분하는 Cyclone Center 등 생물학, 기상학 등 여러 분야의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시민과 함께 과학
이러한 시민 참여 과학 프로젝트는 우리나라에도 존재한다. 지난 2024년 2월부터 진행한 ‘시민과 함께 과학’ 프로그램은 고등과학원 Open KIAS 센터에서 지원하는 것으로 과학 연구에 대중이 직접 참여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 중 ‘모두의 은하 연구소’라는 이름으로 되어 있는 천문학 연구가 있다. 이 연구는 Galaxy Zoo처럼 은하의 형태를 분류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분류에 쓰이는 사진 자료는 Pan-STARRS-1 survey와 DESI legacy survey에서 가져왔다. 이 분류는 추후 우리나라에서 진행할 은하 분광탐사 (A-SPEC: The All-sky SPECtroscopic survey of nearby galaxies)에 사용할 80만 개가량의 은하를 연구하기 위한 기초 자료가 될 것이다.

시민과 함께 과학에는 은하 분류 이외에 우주 입자, 생물 다양성 연구 같은 다른 분야의 연구 또한 같이 진행되고 있다. 과학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 참여하여 연구의 일부분에 동참하는 경험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데이터를 보고 분석하는 작업은 우리가 단순하게 생각했을 때 컴퓨터가 하는 것이 더 정확하고 빠를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작업을 진행하였을 때 AI를 학습시키고 분류하기에는 은하의 모습이 여전히 진화 상태, 각도에 따라 천차만별인 점이 어려움을 주고 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여전히 사람의 손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분이 있다. 아직 과학이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길에 우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조금 뿌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어린 시절 과학을 꿈꿨던 많은 사람들이 지금 다른 길 위에 서 있다 하더라도 가슴 한편에 묻어 둔 그 열정을 잠시 발산해 보는 것은 어떨까. 과학은 여전히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참고자료
- 이영완. 2020. [사이언스 카페]아듀 세티앳홈, 20년 외계인 추적 종료. 조선일보
- 배현진. 2019. 과학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한겨레
- 최영준. 2020. 시민의 힘으로 만든 은하 동물원 ‘갤럭시 주(ZOO)’. 동아사이언스
- 조승한. 2024. “‘우주 연구 필수’ 밤하늘 속 은하 80만 개 분류 도와주세요”. 연합뉴스
- zooniverse 홈페이지
- 시민과함께과학 홈페이지
- AAVSO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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