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착륙이 대성공하면서 길었던 미국, 소련 우주 경쟁의 승패가 결정 나 버렸다. 그동안 미국을 앞질러 여러 성과를 거뒀던 소련은 달착륙 한 번에 K.O 패배를 하게 된 것이다. 달착륙. 정말 대단한 인류의 업적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계획은 11호가 끝이 아니었다. 당장 11호 발사 4개월 후인 1969년 11월, 아폴로 12호가 발사대에 섰다. 발사 당시 번개를 때려 맞는 사고가 벌어지는 등 아주 극적인 미션 수행을 이어간 이 로켓에는 사람들의 관심이 크게 식어버리고 말았다. 당장 홍보 효과를 거두기 위해 가져간 컬러 TV 카메라는 설치 도중 태양빛에 카메라 렌즈가 타버려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대중은 달에서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아폴로 11호와 12호 발사가 있었던 후 새해가 밝았다. 1970년, 세상은 믿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었다. 온 지구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이슈는 달에만 있지 않았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이라는 수렁에 빠져 있었으며 대중문화의 아이콘이던 비틀즈가 공식 해체를 선언했다. 사람들의 관심사에서 빗겨나 있던 아폴로 계획은 20호가 예산 문제로 취소되는 등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1970년 4월 11일. 아폴로 13호가 케네디 우주센터의 발사대에 세워졌다.
아폴로 13호 역시 기존 우주선과 같이 선장, 착륙선 조종사, 사령선 조종사 3명이 탑승할 예정이었다. 보통 아폴로 우주선의 탑승 순서는 3회 전 예비 우주인이 탑승하는 방식이었다. 이 방식을 철저히 지킨 것은 아니었지만 아폴로 7호의 예비 우주인들은 그대로 아폴로 10호에 탑승했으며 아폴로 8호의 예비 우주인들 중에는 이후 11호에 탑승하는 암스트롱과 올드린이 있었다. 이런 순서대로라면 아폴로 13호에 탑승해야 하는 팀은 아폴로 10호의 예비팀이어야 했다.

그러나 이 승무원 탑승 계획은 큰 변화를 겪어야 했다. 기존 10호 예비팀의 선장이었던 고든 쿠퍼는 당시 우주인 책임자였던 딕 슬레이튼과의 마찰로 인해 자리에서 내려왔고 미국 최초의 우주인이었던 앨런 세퍼드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헌데 그마저도 귓병으로 인해 오랜만에 복귀한 터라 연습량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어 13호에 탑승할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결국 13호의 우주인 명단은 아폴로 14호에 탑승할 예정이었던 아폴로 11호의 예비팀으로 교체되었다.
아폴로 13호의 선장이 된 인물은 우주에 3번이나 다녀온 베테랑 중의 베테랑 비행사였던 제임스 러블이었다. 제미니 7호에서 13일간 비행을 하며 최장기간 우주 체류 기록을 세웠던 그는 제미니 계획의 마지막이었던 12호의 선장을 맡았으며(이때 승무원이 우주에 처음 올라간 버즈 올드린이었다.) NASA의 역대 손꼽히는 무모한 미션(소련과의 경쟁을 이기고자 미션 목표를 발사 몇 달 전에 달 궤도 비행으로 바꿔버린 도전이었다.)이었던 아폴로 8호의 사령선 조종사였다. 아폴로 13호는 러블의 우주 비행사 은퇴 전 마지막 비행이자 그가 달을 밟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이전 미션에서 보였던 단점들을 고쳐나가면서 나름 순조롭게 진행되던 아폴로 13호의 비행은 출발 직전 큰 문제에 직면하고 말았다. 팀의 사령선 조종사였던 켄 메팅리가 홍역에 감염되었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온 것이었다. 백업 우주인이던 찰스 듀크의 아들이 홍역에 걸리자 우주인들의 홍역 면역 상태를 점검했다. 그런데 하필 메팅리는 어린 시절 홍역에 걸린 경험이 없어 위험하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고작 발사 7일 전이었다. 결국 메팅리는 백업 우주인이었던 존 스위거트로 교체되었다. (이런 혼란을 겪었지만 정작 메팅리는 홍역에 걸리지 않았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스위거트 역시 철저한 훈련을 거친 우주인이었다. 손발을 맞출 시간이 부족했다는 단점은 그의 전문성으로 상쇄될만했다. 그렇게 러블, 스위거트, 헤이즈 세 사람은 아폴로 13호에 탑승하였고 4월 11일 13시 13분 (미 중부 표준시) 엔진이 점화되었다. 13이라는 서양에서 불길하게 여기는 숫자를 비웃듯 발사된 이 로켓은 출발하고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첫 번째 문제를 보였다. 5개의 2단 로켓 엔진 중 하나가 빨리 꺼져버린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머지 4개의 엔진과 3단 로켓 엔진을 계획보다 더 오래 분사하면서 궤도에서 벗어나는 불상사는 방지할 수 있었다. 깔끔한 출발은 아니었지만 지난 두 번의 미션처럼 달에 가는 것에는 무리가 없어 보였다.


평화로운 비행이었다. 4월 13일에는 우주선 안에서 TV 방송까지 진행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으려 애를 쓰고 있었다. 이 방송이 끝나고 채 10분도 지나기 전에 세 우주인은 폭발음과 진동을 느꼈다. 통신이 2초가량 끊겼고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뭔가 큰 문제가 생겼다.
스위거트 : 휴스턴, 우리에게 문제가 생겼다. (we’ve had a problem here.)
루스마(통제실 지원팀) : 여기는 휴스턴, 다시 말해 달라. (This is Houston. Say again, please.)
러블 : 휴스턴, 우리에게 문제가 생겼다. 메인버스 B에 저전압 발생. (Ah, Houston, we’ve had a problem. We’ve had a Main B Bus Undervolt.)
우주인들은 철저하게 절차대로 행동했다. 착륙선 해치를 닫고 경고등이 켜진 원인을 찾으려 했다. 처음에는 무언가에 충돌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을 하기도 했다. 계기판 상으로 2번 산소탱크에 산소량이 0 이었다. 1번 탱크도 낮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계기판 이상일 확률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렇게 원인을 찾으려 분주하던 때, 창밖으로 이상한 현상이 보였다. 정체불명의 하얀 입자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산소였다. 우주선의 산소탱크가 파괴되어 우주 공간에 산소가 얼면서 분출되고 있는 것이었다. 이제 달 착륙은 아폴로 13호의 문제가 아니었다. 살아남아야 했다.

이 산소탱크 폭발은 사실상 인재 그 자체였다. 극저온으로 저장된 산소는 층이 지면서 분리되는 모습을 보인다. 이 문제 때문에 탱크 속 산소 잔량 측정이 어렵자 팬을 통해 섞어버리는 방법을 취하게 된다. 냉동 교반이라 불리는 이 작업은 우주비행사들이 매번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사고 당시에도 진행하고 있었다. 문제는 산소탱크 그 자체에 있었다. 최초 아폴로 우주선 설계 당시 모든 전원은 28V를 기준으로 만들어졌었다. 추후 재설계를 진행하면서 65V로 변경되었는데 산소탱크에는 이 설계가 적용되지 않은 것이었다. 높아진 전압으로 인해 온도 조절기에 손상이 생겼고 탱크의 온도가 538도 이상으로 올라갔다. 감지기는 27도까지만 감지할 수 있어 이 온도 이상을 파악하지 못했고 결국 전선을 둘러싸고 있던 절연재가 녹아버렸다. 이는 곧 폭발로 이어지게 되었다.
지구에서 약 32만km 떨어진 우주 공간, 우주인 3명은 정확히 얼마나 심각한 고장인지도 파악이 안 되는 우주선 안에 고립되었다. 연료 전지 문제로 전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산소도 마찬가지였다. 결정을 빨리 내려야 했다. 휴스턴의 선택은 달 착륙선이었다. 달에 가는 것이 목적이었던 착륙선을 지구로 돌아오는 귀환선으로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착륙선은 애초에 지구로 돌아오는 것을 생각하고 설계된 것이 아니었다. 사령선의 모든 전력이 끊어지기 전에 착륙선을 가동해야 했다. 추가로 비행 데이터 역시 사령선에서 착륙선으로 전송해야 했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다. 러블은 수동 계산으로 데이터 전송을 시도했다. 그리고 휴스턴의 확인 결과 그의 계산은 정확했다. 사령선은 지구 귀환 때 사용할 약간의 전력만 남기고 완전히 정지되었다.

달 착륙선이 있어 한 고비는 넘겼다. 다만 다음 문제가 다가올 뿐이었다. 바로 다가온 문제는 소모품이었다. 생존에 필수적인 물과 전력, 산소. 이틀 치가 한계였다. 그러나 아폴로 13호의 현재 위치를 고려하면 돌아오는 데 4일이 걸렸다. 소모품을 아끼는 것 말고 돌아오는 시간을 단축시켜야 했다. 지상에 있는 시뮬레이터를 통해 13호를 돌아오게 하기 위한 여러 방안을 실험했다. 실제로는 몇 달에 걸쳐 계산하고 검증해야 하는 시나리오를 길면 며칠, 짧으면 몇 시간 안에 마무리해야 했다. 그렇게 새로운 항로가 나왔다. 달 뒤에서 착륙선에 있는 엔진을 연소하여 지구로 돌아오는 시간을 단축해야 했다. 기회는 단 한 번이었다.

달의 뒤편을 보고 나온 착륙선의 엔진이 켜졌다. 사실 이런 종류의 엔진 연소를 할 경우 배경에 보이는 별을 이용하여 방향을 잡아야 하는데 폭발로 인해 생긴 파편이 이 방식을 막았다. 결국 태양을 이용하여 시작한 연소는 딱 4분 23초 동안 지속되었으며 성공적으로 우주선을 이동시켰다. 이제 지구로 돌아가는 길에 올라탔다.
이후의 길도 험난하긴 마찬가지였다. 전력을 아끼기 위해 착륙선 역시 대부분의 장비를 정지시켰다. 난방 장치 역시 정지되면서 태양빛이 들어오지 않을 때 내부 온도가 3도까지 떨어졌다. 물 역시 아껴야 했다. 하루 200ml의 물로 버텨야 했다. 프레드 헤이즈의 경우 요로 감염에 걸려 몸 상태가 악화되었다. 산소 역시 말썽이었다. 두 사람이 타는 것으로 설계된 착륙선이기 때문에 세 명이 타고 있는 순간 이산화탄소가 가득 차는 것은 당연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산화탄소 제거기를 써야 하는데 어이없게도 사령선의 제거기 필터와 착륙선의 제거기 필터의 모양이 달라 부품 호환이 불가능했다. 이를 위해 비행 매뉴얼의 플라스틱 표지를 부수고 덕 테이프를 덕지덕지 발라 간신히 붙였다. (이 방법을 지상에서 시연한 이후 우주인들에게 연락하여 전달했다.)

극한 환경 속에서 지구를 향해 날아오던 우주선에는 또 한 번의 문제가 발생했다. 연소 기동으로 들어간 궤도에 문제가 있었다. 이대로 지구에 다가오면 지구 대기권에 튕겨 나가게 될 것이었다. 물론 다시 중력에 이끌려 오겠지만 그땐 모든 소모품이 끝난 후일 것이다. 궤도를 다시 설정해야 했다. 한 번으로도 무모한 도전이었던 착륙선 엔진 연소를 다시 해야 했다. 컴퓨터가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아 사실상 모조리 수동으로 진행하는 미션이었다. 달 착륙선의 조준기가 지구에 맞춰졌다. 전자시계도 작동시킬 수 없어 스위거트의 손목시계를 보고 14초의 시간을 재야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성공했다. 우주선은 지구로 향한다.

이제 소모품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제일 위험한 마지막 미션이 우주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지구 재진입이었다. 오랫동안 전원을 켜지 않았던 사령선을 다시 깨워야 했다. 사령선에만 지구 귀환 때 사용 가능한 열 차폐막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냉동고 같은 환경에 있던 사령선에 들어간 우주인들은 계기판을 가득 채운 물기를 닦아가며 조심스럽게 사령선에 전력을 투입했다. 최소 수준으로 유지했던 전력을 모아 투입한 결과 사령선이 다시 눈을 떴다. 이제 고장 난 기계선 부분과 우주인들을 지구까지 안내해 준 착륙선을 분리해야 했다. 기계 선을 분리한 순간 세 우주인은 엄청난 광경을 보았다. 한쪽 면이 그야말로 뜯겨져 나간 처참한 기계선의 모습이었다. 이는 또 다른 심각한 문제를 생각나게 만들었다. 산소탱크 폭발이 과연 기계선의 한쪽 면만 파괴시켰을까? 바로 연결되어 있던 사령선의 열 차폐막에는 다른 충격을 주지 않았을까?



열 차폐막에 문제가 있다면 사실 해결 방법이 없었다. 통제실과 우주인들은 일말의 불안감을 안고 지구 진입을 준비해야 했다. 태평양에 태풍 헬렌이 상륙하여 골칫거리가 되었지만 다행히 아폴로 13호의 착륙 지점에는 영향이 적었다. 지구에 남았던 동료 켄 메팅리가 직접 착륙 절차를 우주선에 설명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6분 정도로 예상되는 통신 두절 기간을 건너 세 우주인이 안전하게 착륙하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1970년 4월 17일, 사령선은 지구 대기를 향해 뛰어들었다.
통신 연결 예정 시간 – 무응답
약간의 불안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통신 연결 예정 시간 +30초 – 여전히 무응답
사령선의 진입 궤도가 조금 완만하기는 했다.
통신 연결 예정 시간 +1분 – 여전히 응답이 없다.
열 차폐막에 문제가 생긴 것일까? 불안한 의심이 고개를 들었다.
통신 연결 예정 시간 +1분 30초.
스위거트의 응답이 들려왔다. 그들은 살아있었다.
통신이 연결되었어도 통제실은 조용했다. 낙하산을 펼친 사령선은 통신 연결 9분 후 태평양에 무사히 착륙했다. 그때가 되어서야 관제사들은 환호하기 시작했다. 우주인들이 다시 지구로 돌아왔다.


아폴로 13호의 실패는 ‘가장 성공적인 실패’라는 이름으로 불리곤 한다. 달에 가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극한의 침착함과 용기로 우주에서 생환하는 더 어렵다고 볼 수 있는 미션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달에 두 번이나 갔지만 결국 착륙은 못한 채로 우주인 생활을 끝낸 러블은 은퇴 후 1994년 아폴로 13호의 사건을 다룬 책을 썼다. 그리고 이 책은 론 하워드 감독의 영화 아폴로 13호로 재탄생하였다. 그는 아직도 시카고 근교의 집에서 살고 있으며 현재 생존한 가장 나이 많은 전직 우주비행사이기도 하다. 잭 스위거트는 은퇴 후 정계에 입문하여 1982년 콜로라도 주 의원으로 선출되었으나 취임 전 골수암으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 프레드 헤이즈는 이후에도 계속 NASA에 근무하며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에도 참여했으나 다시 우주에 올라가지는 못했다. 대신 아폴로 13호에 탑승하지 못한 켄 메팅리는 아폴로 16호에 사령선 조종사로 탑승하여 달에 다녀왔다. (물론 착륙은 안 했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아폴로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은 13호가 다시 끌어당기는 것에 성공했다. 물론 그 이유가 달 탐사라는 것 자체가 아니라 사고로 인한 위기 상황 때문이었다는 점이 문제이기는 했다. 마찬가지로 달 탐사의 위험성이 부각되었고 아폴로 계획의 추가 축소에 영향을 주고 말았다. 사고 원인 역시 점검에 소홀히 했던 인재였기 때문에 NASA에 대한 비판 역시 피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우주인 세 사람과 통제실에서 분투한 여러 관제사들의 노력은 절대 폄하될 수 없는 위대한 것이었다.
영화 아폴로 13호에는 NASA의 비행 관제 책임자였던 진 크란츠 역을 맡은 애드 해리스의 명대사가 나온다. (크란츠는 훗날 자신의 회고록 제목을 이 대사로 정했다.)
“실패는 우리 선택 사항이 아니야.” (Failure is not an option.)
어떠한 일이 있어도 실패를 생각하지 않고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려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아폴로 13호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라? 애초에 실패는 그들의 생각에 없었다. 우주에 도전하려면 이런 마음가짐은 가져야 하지 않을까.
참고자료
- 최기혁 외. 2023. 우리는 다시 달에 간다. MID
- 데이브 윌리엄스 외(강주헌 역). 2024. 나사는 어떻게 일하는가. 현대지성
- NASA 아폴로 13호 기사 모음
- Elizabeth Howell. 2023. Apollo 13: Facts about NASA’s near-disaster moon mission. SPACE.COM
- Joe Pappalardo. 2007. Did Ron Howard Exaggerate the Reentry Scene in Apollo 13?. Smithsonian MAGAZINE
- 피터 미들턴. 2024. 아폴로 13호:극한의 생존기.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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