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과학사: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1897년, 프랑스의 화가 폴 고갱은 인생의 끝자락에서 폭 4m짜리 거대한 대작을 하나 남긴다. D’ où Venons Nous / Que Sommes Nous / Où Allons Nous 라는 프랑스어 제목은 우리 말로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 우리는 무엇이며 /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라는 뜻이다. 사람의 정체성을 묻는 아주 철학적인 질문이 담긴 이 그림을 보면 각자 나름대로의 답을 고민하게 될 것이다. 과연 우리는 어디에서 왔을까. 재미있게도 철학적인 질문이지만 천문학적으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수 있다. 우리가 온 곳이 어디이며 우리는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그 질문에 대한 천문학자들의 대답은 1957년 10월, 현대 물리학 리뷰(Reviews of Modern Physics)에 발행된 속칭 B2FH에서 알 수 있다.

폴 고갱,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보스턴 미술관 소장


 1900년대 초중반, 허블의 발견으로 인해 우주의 크기가 이전보다 상상 이상으로 크다는 사실이 인정되었다. 심지어 점점 더 팽창한다는 증거까지 나오는 상황이었다. 빅뱅우주론이 태동하면서 우주의 시작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던 시기, 이 이론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학자가 있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일하고 있던 천문학자 프레드 호일이 그 주인공이었다. 우주가 한 점에서 커졌다는 이론에 반감을 가지고 ‘하나의 대폭발로 우주가 생성되었다는 말인가.’라고 언급한 장본인이 바로 호일이었다. (이 말에 대폭발. 즉 빅뱅이라는 이론의 이름이 처음 나오게 된다.) 이 상황에서 그가 찾아내고 싶었던 것은 우주에 존재하는 ‘원소의 기원’이었다.

프레드 호일의 사진. 그는 천문학자이기 이전에 굉장한 달변가로 라디오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하여 천문학 이야기를 전달했었다. 또한 SF작가로 활동하며 여러 소설을 쓰기도 했다.


 빅뱅우주론을 주장한 조지 가모프에 따르면 빅뱅 당시 만들어진 양성자와 중성자, 전자 등의 입자가 온도가 낮아지면서 합쳐져 우리가 아는 원소로 변했다는 설명을 하고 있었다. 이를 빅뱅 핵합성 이론이라 부른다. 가모프의 초기 생각으로는 모든 원소가 빅뱅으로 만들어졌을 거라 봤지만 안타깝게도 가장 가벼운 수소, 헬륨, 약간의 리튬 정도만 빅뱅 핵합성으로 제조가 가능했다. 이보다 무거운 수많은 원소의 기원은 아직 찾을 수 없었다. 학자들의 눈은 빅뱅 그 자체를 떠나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별’로 향했다.

 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연구하는 것은 그 이전부터 있었다. 1920년대 영국의 아서 에딩턴은 별 속에 존재하는 수소가 헬륨으로 변하는 과정 중 한 가지를 알아냈고 (양성자-양성자 연쇄 반응, 또는 P-P chain이라 부른다.) 1939년 미국의 한스 베테는 나머지 과정(탄소-질소-산소순환. CNO 순환이라 부른다.)에 대해서 발표하였다. 이처럼 별 안에서 무언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알려진 과정에 따르면 빅뱅 이후 만들어진 수소와 헬륨의 양이 별에 의해 아주 조금은 변해야 했다. 그런데 관측 결과 젊은 별과 나이 든 별의 구성 성분이 달랐다. 젊은 별에는 수소와 헬륨이 대부분이라면 나이 든 별에는 그보다 무거운 원소가 포함되어 있으며 그 비중도 조금씩 늘어났다. 빅뱅으로도 생성되지 못하는 무거운 원소는 어쩌다 나이 든 별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일까.

P-P chain 개요. 수소 6개를 이용하여 헬륨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2차 대전 당시 레이더 관련 기술 연구를 담당하고 있던 호일은 전쟁이 끝난 이후 다시 별을 연구하는 학자로 돌아왔다. 그가 처음 집중한 것은 별에서 만들어진 헬륨의 다음 목적지였다. 수소가 헬륨으로 변했던 것처럼 헬륨도 더 무거운 원소로 변할 수 있지 않을까? 그 목적지로 생각한 원소는 바로 탄소였다. 세 개의 헬륨핵(양성자 2개, 중성자 2개)이 결합하면 탄소(양성자 6개, 중성자 6개)로 변하는 융합 과정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이전 학자들이 이 과정에서 좌절했던 이유는 매우 높은 온도가 필요했으며 헬륨핵 3개가 충돌할 가능성이 너무 낮았다는 점이었다.

 첫 번째 문제점은 금방 해결되었다. 별 내부의 온도가 과거에 예측했던 것보다 더 높았다. 1억 K가 넘는 별 중심부에서 헬륨핵 두 개가 충돌하면 일단 베릴륨(양성자 4개, 중성자 4개)이 만들어진다. 이 베릴륨이 다시 헬륨 한 개와 충돌해야 탄소가 생성되는 것이다. 다만 베릴륨이라는 원소 자체가 매우 불안정하여 아주 빠른 시간 안에 다시 헬륨으로 분해되어 버린다는 점이었다. 탄소가 만들어지려면 충분히 많은 베릴륨이 있어야 했다. 아주 많은 수의 베릴륨이 있다면 일부는 다시 헬륨으로 돌아가도 확률상 탄소로 합쳐지는 것들이 존재할 것이다. 또 여기서 끝나면 안 된다. 만들어진 탄소 역시 헬륨과 충돌하면 산소(양성자 8개, 중성자 8개)가 될 수 있다. 이 반응 역시 매우 빠르게 일어나게 된다면 힘들게 만들어진 탄소가 순식간에 바닥나버릴 것이다. 결국 호일은 특별한 상태의 탄소를 찾아야 했다.

삼중 알파 과정. 베릴륨이 헬륨과 결합해 탄소가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가 생각한 것은 특정 에너지를 가진 탄소 원자가 뜨거운 온도 속에서 그 에너지를 방출하지 않고 보존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흔히 ‘들뜬 상태’라 부르는 이러한 경우의 탄소 원자가 존재할 수 있다면 탄소 자체의 생성 속도가 빨라져 베릴륨이 헬륨으로 쪼개지더라도, 탄소가 산소로 순식간에 변하더라도 충분히 많은 양의 탄소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호일의 계산 결과 그 특정 탄소의 에너지는 7.65MeV였다. (1MeV는 100만 볼트 전압에서 전자 한 개가 가지는 에너지를 말한다.) 이제 이 에너지를 가진 탄소가 존재할 수 있는지 실험으로 확인해야 했다.

윌리엄 파울러의 사진


 호일은 1953년, 안식년을 보내기 위해 영국을 떠나 미국 캘리포니아 공대(칼텍)로 향했다. 저명한 천문학자였던 호일의 환영식에는 당시 세계적 원자핵 물리학자였던 윌리엄 파울러가 있었다. 자신에게 가장 필요하던 능력을 지닌 학자가 눈앞에 있다! 호일은 당연하게도 자신의 이론을 가지고 파울러를 찾아갔다. 탄소 중에 7.65MeV라는 에너지를 가진 들뜬 상태가 가능한지 확인해야 했다. 파울러의 연구진을 설득하여 몇 톤 단위 무게를 지닌 분광기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실험이 시작되었다. 사실 파울러의 연구진들은 처음에 회의적이었지만 호일은 상관없었다. 결과는 나와야 했다.

실제적으로 호일의 이론을 증명하는 실험을 진행한 사람은 파울러의 연구실의 박사후 연구원이던 워드 훼일링(사진)이었다. (caltech 제공)


 실험 시작 약 2주가량이 지났을 때, 호일이 예측한 에너지를 가진 탄소가 발견되었다. 더 무거운 원소로 가기 위한 실마리를 잡아낸 것이다! 호일의 연구는 이제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파울러가 참여했으며 케임브리지 대학의 젊은 천문학자 부부였던 마거릿 버비지와 제프리 버비지가 합류했다. 버비지 부부가 확인한 별의 구성 성분 자료를 바탕으로 원소의 기원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탄소로부터 출발한 무거운 원소의 기원은 술술 풀려나갔다. 탄소, 산소 이후 네온, 마그네슘, 규소, 황 등등의 원소가 별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그 마지막 원소가 정해졌다. 바로 철이었다. 철은 핵의 결합 에너지가 커서 핵융합이 일어나지 않는 가장 안정적인 상태이다. 철 원소를 핵융합하여 더 무거운 원소로 만드는 과정에 들어가는 에너지가 융합 이후 발생하는 에너지보다 크다면 별이 이런 과정을 할 이유가 없다.

버비지 부부의 모습. (caltech 제공)


 결국 별 안에서는 철이 마지막 원소가 된다. 그러나 우리는 주기율표만 봐도 훨씬 더 많은 원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인류가 인공적으로 만든 원소를 제외하고서라도 92번 우라늄까지 자연에서 확인된다. 호일과 연구팀은 여전히 별을 원소 제조 공장이라 생각했다. 무거운 별이 철까지 만들면서 마지막 발악을 하고 나면 더 이상 자체 중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붕괴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커다란 폭발을 초신성이라 부른다. 이 과정에서 뿜어져 나온 중성자가 철과 충돌하여 새로운 원소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충돌한 중성자가 붕괴하여 양성자로 변해 더 무거운 원소가 되는 과정이다.)

초신성 상상도
주기율표. 우라늄 이후의 원소들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대한화학회 제공)


 호일이 시작한 핵합성 이론은 별 내부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아주 중요한 연구가 되었다. 1957년 발표된 논문의 이름이 B2FH라 불리는 이유는 저자의 이름 앞 글자를 딴 것이었다. (Margaret Burbidge, Geoffrey Burbidge, William Alfred Fowler, Fred Hoyle) 논문 인용만 5000회 가까이 되니 얼마나 파급력 있는 이론이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이론은 호일이 그렇게 싫어하던 빅뱅우주론을 더 튼튼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중원소의 기원 문제는 빅뱅우주론에서도 문제였고 호일이 주장하던 다른 우주론에서도 똑같이 문제였다. 하지만 이 핵합성 이론을 통해 양쪽 모두의 문제를 같이 해결해버리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거기에 여전히 호일의 우주론에서는 가벼운 원소인 수소와 헬륨의 비율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지만 빅뱅우주론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자신의 문제점은 그대로 두고 상대방의 문제점을 없애주는 친절한 작업이 되었다.

1971년에 촬영된 네 사람의 모습. (촬영자:Don Clayton)


 시간이 흘러 1983년, 논문 저자 중 한 명이었던 윌리엄 파울러는 핵합성 이론 연구의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이상하게도 해당 논문의 아이디어를 제공한 사람은 호일이었지만 그를 제외하고 파울러만 수상한 것이다. (당시 같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사람은 별 진화를 연구한 수브라마니안 찬드라세카였다.) 실제로 파울러는 혼자 상을 받았다는 점에 당황했으며 강연같은 자리에서 지속적으로 호일과 버비지 부부의 공로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호일이 반골 기질이 심했고 이전 노벨상 수상자 선정에 관하여 (펄사 발견에서 실질적 발견자인 조슬린 벨이 수상자 명단에서 빠진 사건) 강하게 비판한 경력이 있다는 것 때문에 수상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기도 했지만 진실을 알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 그래도 그가 위대한 천문학자였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천문학 연구소에 있는 프레드 호일의 동상


 과거 대학 시절 인기 있던 드라마가 하나 있었다. ‘별에서 온 그대’라는 제목의 드라마였는데 당시 교수님 한 분이 수업 중에 이런 말씀을 했었다.

“여러분 역시 별에서 온 그대들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간단했다. 별이 죽으면서 탄생한 수많은 원소들이 모여 이뤄진 것이 바로 우리였다. 지금 현생을 살아가는 모든 것들이 한때는 밝게 타오르던 별의 일부였다는 것이다. 인류의 기원? 지구의 기원? 그 많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름 모를 별 하나가 있다. 우리의 조상은 모두 같았던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고갱의 첫 번째 질문에 대답해 보자.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별에서 왔다.’

참고자료

  1. 샘 킨. 2011. 사라진 스푼. 해나무
  2. 이지유. 2024. 집요한 과학자들의 우주 언박싱. 곰곰
  3. 해리 클리프. 2022. 다정한 물리학. 다산사이언스
  4. 안홍배. 2024. 은하의 모든 순간. 위즈덤하우스
  5. 김충섭. 2010. 탄소는 어디서 왔나. 네이버캐스트
  6. 궤도. 2021. 인류는 우주 먼지로부터 탄생했다. 주간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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