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과학사: 심우주와의 랑데부

 2016년 9월 30일. 67P/추류모프-게라시멘코 혜성 주변을 돌고 있던 유럽 우주국(ESA)의 탐사선 로제타가 12년 6개월의 여정을 마치고 임무를 종료하였다. 약 2년간 궤도 비행했던 혜성에 착륙하여 저 먼 우주를 항해하는 완벽한 동반자가 되기를 선택한 것이다. 오랜 여행의 끝에 영면에 든 로제타 탐사선은 인류 심우주 탐사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업적을 남긴 대단한 친구였다. 그 발자취를 따라가 우리 역시 로제타와 랑데부를 시도해 보도록 하자.

혜성에 접근하는 로제타의 상상도 (ESA 제공)


 고대부터 공포의 대상이었던 천체 현상, 혜성을 직접 탐사해 보겠다는 인류의 야망이 드러난 것은 1986년 핼리 혜성의 방문 때문이었다. 76년 만에 돌아오는 핼리 혜성을 위해 각 나라에서 탐사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NASA는 지구 자기장, 태양풍 연구를 위해 만들어진 ISEE-3 위성을 이용하여 멀리서 핼리혜성 관측을 할 예정이었고 소련의 경우 금성 탐사선이던 베가 1호와 2호를 핼리혜성 관측에도 투입하려 했다. 여기에 일본 역시 사키가케, 스이세이라는 이름의 위성을 발사하여 핼리혜성을 노리고 있었다. ESA는 여러 탐사선 중 가장 혜성에 가깝게 접근할 지오토를 준비 중에 있었다.

1986년에 촬영한 핼리 혜성의 모습


 이렇게 가까이 다가갈 5대의 탐사선을 각 나라에서 준비하면서 동시에 더 거대한 프로젝트가 출발선에 올랐다. 지오토가 혜성에 근접하여 촬영하는 정도라면 이 미션은 혜성 샘플 귀환이라는 초고난이도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1985년 출발한 이 프로젝트는 채 1년도 되지 않아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다. 1986년 1월. 프로젝트에 공동 참여하기로 했던 NASA의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폭발하는 대형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안 그래도 예산 삭감에 시달리던 NASA는 챌린저호 사건 등 여러 문제에 휩쓸려 혜성 샘플 리턴 프로젝트에서 하차하게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ESA 혼자였다. 결국 최종 미션은 혜성에 착륙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물론 이것 역시 절대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지오토 탐사선의 모습. 지오토를 포함한 5대의 탐사선을 핼리 함대(Halley Armada)라고 불렀다. (ESA 제공)


 미션의 방법이 정해졌다. 그렇다면 어디로 갈지 정해야 한다. 당시 알려진 혜성이야 여럿 있었지만 적당한 궤도를 돌고 있어야 했다. 오랜 분석 끝에 선정된 목표물은 46P/위르타넨 혜성이었다. 2002년 테스트를 마친 탐사선에게 남은 일은 아리안5 로켓에 탑승하여 우주로 날아가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해 12월, 개량된 아리안5 로켓이 공중분해되는 사고가 발생하고 만다. 10년 이상 준비한 로제타 탐사선을 실패한 아리안5 개량 로켓에 바로 탑재하는 것은 너무 위험이 컸다. 결국 위르타넨 혜성에 도착할 수 있는 발사 가능 기한이 지났다. 연구팀은 아리안5 로켓이 정상화되기를 기다리면서 새로운 목표 혜성을 찾아야 했다.

아리안5 로켓의 모습. 해당 로켓은 2021년에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을 발사시켰다. (NASA 제공)


 약 5개월의 시간이 흘러 2003년 5월. 새로운 목적지가 선정되었다. 67P/추류모프-게라시멘코 혜성은 1969년 소련의 천문학자 클림 추류모프와 스베틀라나 게라시멘코에 의해 발견된 천체였다. 6.45년마다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단주기 혜성으로 가장 먼 원일점이 목성 궤도보다 조금 바깥에 위치하고 있다. 이 혜성을 향하기 위해서는 바로 날아갈 수 없었다. 지구, 화성의 중력을 이용한 플라이바이를 통해 속도를 얻어야 했다. 도합 64억 km에 이르는 기나긴 여정이 탐사선을 기다리고 있었다.

로제타 탐사선이 2014년 3월에 촬영한 추류모프-게라시멘코 혜성의 모습. M107 성단과 같이 찍혔다.(ESA 제공)
추류모프-게라시멘코 혜성의 궤도. 화성 안쪽부터 목성 바깥쪽까지 이어진다.


 시간이 흘러 2004년 3월 2일. 프랑스령 기아나에서 엄청난 연기를 뿜으며 아리안5 로켓이 날아올랐다. 탐사선 로제타의 출발이었다. 로제타는 발사 이후 2010년까지 지구를 세 번이나 다시 방문했다. (2005년 지구 1차 플라이바이, 2007년 화성 플라이바이, 2007년 지구 2차 플라이바이, 2009년 지구 3차 플라이바이.) 먼 길을 돌고 돌아 출발점으로 다시 찾아와 속도를 선물 받은 로제타는 중간중간 다른 소행성(2867 슈테인스, 21 루테티아)들을 지나치며 표면을 촬영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로제타가 촬영한 루테티아 소행성의 모습. (ESA 제공)


 2011년, 이렇게 성공적으로 항해하며 세상을 구경하던 로제타에게 잠들 시간이 다가왔다. 심우주를 탐사해야 하는 탐사선들은 먼 거리에서도 생존할 여력을 남겨놓기 위해 동면에 들어가야 하는 일이 생긴다. 최소한의 전력(온도를 조절하는 등 필수적인 업무)만 남기고 절전모드에 들어가 망망대해를 잠든 채 떠돌아야 하는 것이다. 1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순차적으로 과학 기기를 끄고 태양 전지판을 점검하며 시간을 보냈다. 2011년 6월. 로제타는 최종 절전모드에 들어가 31개월가량의 기나긴 잠에 빠지게 되었다. 이제 탐사선은 홀로 남았다.

 시간이 흘러 2014년 1월 20일. 로제타 탐사선이 깨어날 시간이 되었다. 사실 우리가 컴퓨터를 껐다 키는 것은 그냥 전원만 누르면 되는 간단한 일이다. 하지만 무려 9백만 km 떨어진 공간에 위치한 전원이 무사히 작동할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모든 장치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로제타는 전원을 켜고 자세를 바로잡아 지구를 향해 신호를 보내야 했다. 모든 연구진이 맘 졸이던 그때, 로제타로부터 신호가 날아왔다. 낮잠에서 깨어난 탐사선의 인사말이었다. “Hello, World!”

호주에 위치한 deep space network의 모습. 이 안테나로 로제타의 동면 신호를 보냈다.


 이제 로제타 탐사선의 마지막 목적지만 남았다. 동면 후 점검 기간 동안 확인한 혜성의 위치로 점점 다가가던 로제타는 2014년 5월부터 혜성 궤도에 랑데부를 하는 과정에 들어갔다. 약 60만 km 남은 목표물까지의 거리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6일, 혜성까지의 거리는 고작 100km 가량이었다. 드디어 혜성 궤도 랑데부에 성공한 것이다. 10년 5개월 동안 무려 64억 km를 날아 최초로 혜성 주변을 도는 탐사선이 되었다.

2014년 8월 3일 촬영된 추류모프-게라시멘코 혜성의 근접사진 (ESA 제공) 이 특이한 모양을 연구하여 혜성이 두 천체가 합쳐져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도착의 환호도 잠시, 곧바로 로제타는 혜성 표면에서 착륙선이 착륙할 장소를 찾아야 했다. 작은 혜성의 표면에서 이상적인 착륙 장소는 없었다. 착륙이 정확하게 핀 포인트로 진행되는 것은 힘들기 때문에 장소를 넓게 탐색해야 하는 데다 약한 혜성의 중력 때문에 경사가 심한 지역에서는 튕겨 나가버릴 위험성이 있었다. 결국 여러 후보지를 확인한 끝에 J 포인트라 불리는 지역이 착륙지로 선정되었다. (추후 이 장소의 이름은 아길키아로 명명되었다.)

필레의 착륙 목표 지점 (ESA 제공)


 세심한 준비 끝에 11월 12일 08:35분(GMT 기준). 로제타 탐사선에 탑재되었던 착륙선 필레가 사출되었다. 하강은 안정적이었다. 예정된 목적지를 향해 순조롭게 내려가던 필레는 15시 34분 착륙 신호를 지구로 송신했다. 연구팀이 완벽한 착륙을 자축하며 행복해야 할 때인데 상황이 조금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착륙에 성공했어야 할 필레가 여전히 회전하고 있다는 이상한 정보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필레는 착륙지에서 튕겨 나가버린 것이다.

로제타에서 촬영한 분리된 필레의 모습 (ESA 제공)


 착륙선의 바닥에는 혜성에 고정할 수 있도록 작살이 발사되는 장치가 있었다. 하지만 이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공중으로 떠버린 필레는 1시간 50분 동안 이동하여 다시 표면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물수제비 하듯 한 번의 도약을 추가하여 세 번째 착륙 신호를 보냈다. 로제타는 자신의 동반자가 어디에 떨어졌는지 찾아내지 못했다. 신호는 오고 있지만 전력에 문제가 생겼다. 태양빛을 받지 못해 발전을 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결국 필레 탐사선은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던 전력을 통해 단 3일 정도의 시간만 작동이 가능했다. 그렇게 필레는 짧은 시간 동안의 혜성 탐사를 마치고 잠들었다. 로제타는 그렇게 오랜 동료를 잃고 홀로 남게 되었다.

필레가 이상적으로 착륙했다면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래쪽 작살에 문제가 있었다. (ESA 제공)


 필레가 멈췄어도 로제타는 여전히 혜성을 돌고 있었다. 추류모프-게라시멘코 혜성은 2015년 8월 13일.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를 지나 다시 더 먼 우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혜성이 태양에 의해 어떤 영향을 받는지 꾸준하게 탐사하던 로제타에게도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태양에서 점점 멀어지는 혜성을 따라가면서 더 이상 태양 전지로 충분한 에너지를 생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원래 2015년 12월로 예정되었던 로제타의 탐사 일정이 연장되기는 했지만 2014년 9월 말로 긴 여행의 끝이 정해져 버렸다.

2016년 9월 2일. 로제타가 마지막을 준비하던 때 필레가 우연히 발견되었다. 혜성의 표면 틈에 박혀있는 모습이 보인다. (ESA 제공)


 로제타의 마지막은 동료 필레의 곁으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혜성에 착륙해 하나가 되어 태양계를 여행하게 될 예정이었다. 수개월 동안 조금씩 혜성에 착륙하기 위해 하강하던 탐사선은 2016년 9월 30일, 19km 고도까지 내려갔다. 이제 로제타는 마아트(Ma’at)라 이름 붙인 지역으로 충돌하는 것이다. 하강 시간 내내 혜성을 촬영하며 지구로 그 사진을 전송하던 로제타는 11시 19분 37초, 마지막 신호를 끝으로 지구와 이별하였다. 이제 혜성의 일부가 되어 동료 착륙선 필레와 함께 저 먼 우주로 향하게 되었다. 인류 최초의 혜성 근접 탐사선의 12년 여정이 막을 내렸다.

로제타가 보낸 마지막 사진 (ESA 제공)


 로제타의 신호는 끊겼지만 남겨놓은 수많은 자료는 아직도 활발하게 연구 중에 있다. 혜성에 존재하는 물 성분이 지구에 있는 물과 다르다는 사실을 밝혀 기존 지구상 물의 기원이 혜성이라는 설을 부정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으며 아미노산의 일종인 글리신을 발견하여 지구 생명체 기원이 혜성이라는 설에 힘을 주기도 했다. 이것뿐 아니라 혜성의 절벽이 무너지는 장면, 원자외선 오로라가 발생하는 장면 등 그동안 알지 못했던 신비한 사실을 자료에 담아 보내주었다. 2016년에 공식적으로 끝난 로제타가 아직까지도 연구에 큰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8km 떨어진 곳에서 촬영한 혜성 (ESA 제공)


 로제타라는 이름은 고대 이집트어 해독에 큰 도움을 준 로제타스톤에서 따 온 것이다. 마찬가지로 필레 착륙선 역시 이집트어 해독에 도움을 준 필레 오벨리스크에서 가져왔다. 학자들은 로제타 탐사선이 혜성의 비밀을 해독할 수 있는 열쇠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런 이름을 쓴 것이다. (그런데 로제타스톤과 필레 오벨리스크가 모두 약탈 문화재인 것은 좀 아이러니긴 한다.) 혜성은 태양계 형성 당시의 비밀을 그대로 품고 있는 것으로 추측되는 천체이다. 지구가 만들어지기 이전 과연 이 태양계는 어떤 곳이었으며 행성이 어떤 재료를 통해 만들어졌을까. 우리가 가볼 수 없는 과거의 타임캡슐이 저 작은 얼음덩어리 속에 존재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로제타가 태양계 탄생의 암호 해독 임무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로제타 스톤의 모습 (대영박물관)


 추류모프-게라시멘코 혜성의 다음 태양 근접은 2028년 4월 9일이다. (사실 2015년 이후 2021년에 근접을 한 번 하긴 했다.) 과연 혜성 표면에 내려앉은 로제타와 필레는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이후 과학자들은 이 혜성이 다시 탐사선을 보내 샘플을 지구로 귀환하는 미션을 제안하였으나 최종 선정에는 실패하였다. 특별한 변경이 없는 한 우리가 다시 로제타와 필레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어디 있는지 안다. 언제 돌아올지도 안다. 어린왕자와 함께하는 여우처럼 반가운 손님이 찾아오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면 이것 역시 행복한 일 아니겠는가. 긴 여정 끝에 잠든 두 여행자가 돌아올 때 반가움과 고마움을 담아 저 먼 우주에 전해보는 것도 좋겠다.

참고자료

  1. ESA 로제타 아카이브
  2. 팀 샤프. 2017. Rosetta Spacecraft: To Catch a Comet. SPACE.COM
  3. 마이클 그레슈코. 2016. 6 Amazing Discoveries From Rosetta’s Epic Comet Encounter. NATIONAL GEOGRAPHIC
  4. 조나단 아모스. 2015. Rosetta comet lander tells magnetic story. BBC
  5. 리처드 홀링햄. 2015. Rosetta: The whole story. BBC FUTURE
  6. 변지민. 2016. 탐사선 로제타의 마지막 임무 “혜성에 충돌하라”. 동아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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