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량 특집: 지구 멸망 보고서

 기나긴 장마와 무더위로 가득한 여름밤. 오랜 옛날부터 이 시기에는 공포 컨텐츠가 고개를 내밀었다. 공포가 시원함과 무슨 관계가 있나 싶지만 과학적으로 공포물을 보는 사람들은 심장 박동 수가 증가하고 근육이 경직되며 혈관에 혈액 공급을 줄여 체온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처럼 무서움이 도움이 되는 시기. 우주에서 벌어질 수 있는 공포스러운 몇 가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우리 지구는 약 46억 년 전 태어나 지금까지 진화하여 우주 공간 속에 현재 유일하게 생명체를 품고 있다고 알려진 특별한 천체이다. (물론 우주 어딘가에 다른 생명체를 품은 공간이 있을 수 있지만… ) 아주 긴 시간 우리에게 보금자리가 되어 준 지구인데 최근 들어 ‘지구가 위험하다’라는 슬로건을 자주 만날 수 있다. 환경 오염 등의 요소가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고 궁극적으로 우리 인류에게 큰 위협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엄밀하게 따져보자면 지구가 큰일났다기보다 지구 위에 생명체가 큰일 날 사건이긴 하지만 우리에겐 그 두 가지를 구별하는 것이 딱히 의미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어찌 되었건 지구가 또는 지구생명체가 여러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리고 지구가 멸망할 시나리오 역시 굉장히 다양하게 존재한다. 지구 내부적인 요인뿐 아니라 저 우주 공간에서도 우리를 위협하는 요소가 곳곳에 산재해있다. 그럼 그 우주적인 요인 중 몇 가지를 같이 알아보도록 하자.

NEO의 위협

 근지구천체(NEO: near-Earth object)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상당히 많은 사람이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지구 역시 NEO에 의해 대부분의 생명체를 떠나보낸 경력이 있다. 공룡의 시대를 끝장내버린 것이 바로 소행성 충돌이었기 때문이다. 멕시코의 유카탄반도에 남은 크레이터는 6천6백만 년 전 약 10km 이상의 운석이 떨어진 흔적이다. 이 충돌로 지구 생명체의 75%가량이 멸종되었다. 이 시기를 백악기-제3기 대멸종이라 칭한다.

유카탄 반도의 사진. 사진 속 육지 상단부에 위치한 크레이터의 절반은 바다에, 남은 절반은 땅에 있으며 지름이 180km에 달한다.


 물론 거대한 지구에 10km 남짓한 운석 덩어리가 떨어졌다고 해서 지구 자체에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12700km가 넘는 지구 지름에 비해 약 180km 정도인 칙술루브 크레이터는 피부에 난 작은 생채기 정도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충돌로 인해 대기를 뒤덮을 정도로 많은 양의 먼지가 올라왔으며 이 먼지로 인해 태양빛이 충분히 들어오지 못해 생태계에 심각한 변화를 초래했다. 돌덩어리 하나가 지구에 리셋 버튼을 누른 꼴이었다.

운석 충돌로 멸종하는 공룡의 상상도. 현생 인류보다 더 오래 지구를 지배했던공룡들은 한순간에 멸종하고 말았다.


 칙술루브 수준의 충돌은 한 번 있었던 것이 아니다. 달 생성을 만들었던 지구 초창기에 벌어진 천체 충돌은 훨씬 커다란 사건이었다. 화성 크기로 추정되는 원시 행성과 충돌한 지구는 표면이 다 녹아버리는 바람에 충돌 구덩이조차 남기지 못했다. 이런 먼 과거 말고 최근에도 운석 충돌의 위험은 계속되고 있다. 2013년 2월 15일. 러시아의 첼랴빈스크 지역에 떨어진 운석은 약 15m 정도의 크기였다. 1000명이 훌쩍 넘는 부상자를 내고 천운으로 사망자를 발생시키지는 않았던 이 사건의 큰 위협 요소는 대기권 돌입 시까지 전혀 사전 탐지를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 사건 이후 대중의 경각심이 상승하였으며 전 세계적으로 근지구천체의 감시에 많은 역량이 투자되고 있다.

첼랴빈스크 운석이 떨어지면서 만들어낸 모습. 지구 대기에 들어오면서 여러 조각으로 분해되었다.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돌덩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당장 지난 달인 6월 27일. 한라산보다 조금 큰 소행성인 2011 UL21가 지구 근방을 지나갔다. (가장 접근했을 당시 660만 km 정도의 거리로 지구 달 사이 거리의 약 17배 정도 된다.) 이러한 천체 중 하나라도 지구를 정조준하고 날아온다면? 분명 어떠한 경우이건 지구 생태계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은 확실할 것이다.

NASA에서 공개한 2011 UL21 소행성의 사진. 아래쪽의 원에 들어있는 작은 점은 소행성을 돌고 있는 작은 위성이다.


태양 폭발의 위협

 최근 들어 태양 활동이 활발해졌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려온다. 우리나라에서 오로라 사진이 촬영되기도 하는 등 태양이 심상치 않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런 활동이 만약 더 강해진다면 지구 생명체들의 에너지원이나 다름없는 태양이 거꾸로 지구 생명체를 위협하는 최악의 악당이 될 수도 있다.

2024년 5월 10일의 태양 사진. 중앙 오른쪽 부분에 흑점이 모여있는 곳이 보인다.


 태양 사진을 보면 검은색 점이 군데군데 박혀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흑점이라 불리는 이 구역은 주변부보다 온도가 낮아 검은색으로 보이는 곳이다. (실제 흑점이 검은색인 것은 아니다.) 태양의 자기장이 꼬이는 곳에 생기는 흑점은 태양에서 일어나는 폭발 현상의 진원지이다. 이 흑점의 개수가 많아질수록 ‘태양 활동이 활발해진다.’라고 이야기하는데 그 주기가 대략 11년이다. 개수가 많아졌으니 그만큼 흑점 폭발 활동 역시 많아진다. 코로나 질량 방출(CME)이라 불리는 폭발은 지구까지 도달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 폭발 에너지는 지구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

2013년 6월 20일에 있었던 CME의 모습. 이때 방출된 입자가 수십 억 톤에 달한다.


 실제 1859년에 있었던 캐링턴 이벤트라는 태양 폭발 사건으로 전산망이 마비되는 일이 있었으며 2012년에는 강력한 태양풍이 지구를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과거에 비해 전력 사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현대 사회에서 태양 폭풍으로 인한 전산망 붕괴는 경제적으로도 심각한 타격이 올 수 있다. 이처럼 강력한 태양 폭풍이 올 것으로 예상되는 시기는 얼마 남지 않았다.

 내년 말 정도로 생각되었던 이번 태양 활동 극대기는 기존 예측보다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이미 지난 주기에 있었던 극대기 태양 흑점 개수를 뛰어넘었으며 이전 관측 자료에 나타나는 주기 현상이 그대로 반복된다면 지난 5월에 있었던 거대한 폭발에 버금가는, 혹은 더 커다란 폭발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태양 폭발은 다른 위협과 다르게 좀 더 직접적인 생명의 위험이라기보다 일상을 위협하는 문제이다. 당장 몇 년 전 바이러스로 인해 일상생활에 큰 타격을 입은 채 몇 년을 보냈던 인류에게 거대한 태양 폭발로 생겨날 수 있는 또 다른 시스템의 붕괴는 상당한 공포를 가져다줄 수 있다.

현재 태양의 흑점 수를 보여주는 그래프. 예측 범위를 벗어나 빠른 속도로 흑점 수가 증가함을 볼 수 있다.


감마선 폭발의 위협

우주에는 종종 감마선 폭발이라는 사건이 벌어지곤 한다. 원래 이 감마선 폭발은 우주에서 예측을 하고 찾아냈다기보다 다른 이유 때문에 알게 된 경우였다. 냉전 시대 소련이 핵실험 금지 조약을 어기는지 확인하기 위해 발사한 위성에서 의문의 감마선이 검출되었다. 실제 핵실험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것이 감마선이었지만 이때 검출된 것은 핵무기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우주 어딘가에서 날아온 빛이었다.

감마선 폭발 상상도


 첫 발견이 1967년이었으나 이 감마선 폭발 연구가 제대로 시작된 것은 시간이 한참 지난 1990년대가 다 끝나갈 즈음부터였다. 지구 대기에 의해 확인이 어려운 감마선인 만큼 위성을 통해 관측이 진행되었다. 폭발이 확인되면 방향을 특정하고 이후 감마선이 아닌 다른 파장의 빛을 통해 해당 천체를 연구하는 방식이었다. 이 폭발의 빛은 어마어마한데 2008년 발견한 폭발의 경우 75억 광년 거리에서 맨눈으로 희미하게 보일 정도의 빛을 30초가량 보여줬다.

허블우주망원경이 촬영한 외부 은하 속 감마선 폭발들


 이런 감마선 폭발은 블랙홀과 연관되어 있다고 추측된다. 거대한 초질량 별이 생애 마지막 과정, 블랙홀로 붕괴하면서 방출하는 것이다. 또 다른 과정으로는 중성자별 간의 충돌 혹은 중성자별과 블랙홀의 충돌에 의해 새로운 블랙홀이 만들어지면서 방출하는 방법이 있다. 이 폭발 과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감마선은 360도 사방으로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매우 좁은 영역으로 한정되어 있다.

중성자별이 충돌하는 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한 그림. 두 중성자별이 충돌하면서 감마선 폭발이 발생하고 질량의 일부를 날려버리면서 블랙홀이 탄생한다.


 이렇게 강력한 감마선 폭발이 저 먼 우주의 외부 은하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은하에서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사실 폭발 방향이 무작위이기 때문에 단순히 우리은하 안에서 벌어진다고 지구가 위험하다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무작위로 산탄총 마냥 터지는 감마선 폭발이 지구 방향을 겨냥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 역시 없다. 수천 광년 내 우리은하 가까운 지역에서 터진 감마선 폭발이 지구를 덮치면 고에너지 복사에 의해 오존층을 박살낼 수 있다.

 이런 감마선 폭발은 이전에 지구에 영향을 주었다는 연구 결과도 존재한다. 총 5번 있었던 지구 대멸종 중 4억 5천만 년 전인 오르도비스기 대멸종의 원인이 감마선 폭발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너무 오래된 사건인데다 폭발이 있었다면 그 원인이 된 천체를 찾아야 하는데 이미 블랙홀이 되었다면 그 천체를 확인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다는 것이다. 조금 더 확실한 증거가 있던 사건은 서기 774년 경으로 추정되는 감마선 폭발이다. 이 시기 제작된 종이에서 방사성 원소가 상당히 많이 발견되었으며 같은 시기 빙하에서도 고에너지 입자에 노출되어 생긴 것으로 추정되는 베릴륨-10 농도가 높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태양이나 초신성 같은 것이 원인이었다면 다른 어떠한 방식으로라도 기록이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록이 없는 것을 보아 감마선 폭발로 짧게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이라 생각한 것이다.

 지구가 사실 상당히 많은 위협 속에서 우리를 품어주고 있다는 사실이 보이는가? 위에 설명한 방식 말고도 단순히 시간이 오래 지나 태양이 적색거성이 되어 지구를 삼킬 거라는 내용, 떠돌이 행성이나 별에 의해 태양계에 수많은 소행성, 혜성이 쏟아져 지구가 위험해질 거라는 내용, 태양의 은하면 이동에 의해 우주선 유입이 상승하여 위험이 생길 수 있다는 내용 등 여러 시나리오가 지구를 쳐다보고 있다.

 하지만 그 모든 내용은 확률로만 존재하고 있다. (그것도 매우 매우 낮은 확률이다.) 실질적으로 우리를 위협하는 요소는 저 우주에서 날아올 그 무언가보다 지구 온난화, 생태계 파괴로 대표되는 환경 문제일 것이다. 살벌한 우주 속에서 우리를 50만 년 가까이 보호해 준 지구를 외부 요인도 아니고 우리 손으로 파괴하는 것은 너무한 처사가 아닐까. 비록 태양이 터지거나 갑자기 날아올 소행성이나 감마선을 완벽하게 막아낼 능력이 없는 관계로 위와 같은 사건이 일어난다면 지구 생명체의 미래를 보장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우리 눈앞에 당장 존재하는 문제점을 해결해 가면서 ‘막을 수 있는’ 재난을 피해가는 것이 당장 인류가 할 수 있는 최선일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보존된 지구를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인류의 숙제일 것이다.

참고자료

  1. 이동훈. 2013. 킬러 소행성의 위협. 서울경제
  2. 송현서. 2024. 지구로 돌진하던 한라산보다 큰 소행성, 실제 모습 촬영됐다…사진 공개[포착]. NOW news
  3. 이명헌. 2019. 공룡이 소행성 충돌에 멸종한 이유?…그때는 천문학자가 없었으니까.경향신문
  4. 곽노필. 2024. 내년 강력한 ‘태양 폭풍’ 예보…흑점 20년 만에 가장 많을 듯. 한겨례
  5. 김진호. 2018. [우주재난]예측불허 태양흑점 폭발 문명 위협하는 재앙이 되다. 동아사이언스
  6. 문병도. 2017. [문병도의 톡톡 생활과학]6가지 지구 멸망 시나리오…인류를 구하라. 서울경제
  7. 2013. 8세기 지구에 감마선 폭풍 닥친 듯. 연합뉴스
  8. 크리스 임피. 2023. 별의 무덤을 본 사람들.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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