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과학사: 목성의 딥 임팩트

 1994년 7월 16일. 전 세계의 과학자들은 어쩌면 자신의 평생 중 한 번 볼 수 있을지 모를 우주의 대사건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 끝에는 밤하늘에서 아주 밝게 보이는 거대한 행성, 목성이 있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목성을 향해 21조각으로 부서진 슈메이커-레비9 혜성이 달려들었다. 인류가 최초로 천체의 충돌을 미리 예측해냈고 그 장면을 생생히 포착한 순간이었다.

유진 슈메이커와 케롤라인 슈메이커(좌측), 데이비드 레비(우측)의 모습. 재미있는 건 세 사람 중 천문학을 전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유진 슈메이커는 지질학자, 케롤라인 슈메이커는 역사학, 정치학 전공, 레비는 영문학 전공자이다.


 슈메이커-레비9 혜성이 처음 발견된 것은 충돌 1년 전인 1993년 3월 24일이었다. 당시 팔로마 천문대에서는 근지구천체(NEO)를 찾는 미션을 수행 중에 있었다. 이미 1980년대부터 팔로마 소행성 탐사(Palomar Asteroid and Comet Survey)라는 작업을 수행 중이던 유진 슈메이커, 케롤라인 슈메이커 부부와 데이비드 레비가 그 주인공이었다. 3월 24일 당시, 바람이 강하고 구름이 있던 날이었다. 굳이 비싼 필름을 사용해가며 관측을 이어가기에 좋은 상황은 아니었지만 해당 필름에 약간의 손상이 있었다. 어차피 망가진 필름인 관계로 세 사람은 촬영을 이어갔다. 그 결과 이상한 천체가 사진에 나타났다.

최초로 촬영된 슈메이커-레비9 혜성의 모습. 길게 늘어진 형태가 확실하게 보인다. (팔로마 천문대)


 세 사람이 혜성을 발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이름부터 슈메이커-레비 9으로 붙은 것처럼 주기를 가지는 혜성으로는 9번째 발견이었다. 그러나 이번 혜성은 사진만 봐도 심상치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길이가 길고 넓게 퍼져 있었으며 핵이 여러 개가 보였다. 심지어 목성에서 약 4도 정도만 떨어져 있어 그 위치도 특이했다. 이 정체불명의 혜성 파편에 대한 관심은 93년 5월. 궤도 예측이 나오면서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앞으로 1년 2개월 뒤. 1994년 7월, 해당 천체가 목성에 충돌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1994년 5월 17일에 허블 망원경으로 촬영된 슈메이커 레비 혜성의 핵들


 슈메이커-레비9의 궤도를 계산한 결과 혜성은 1992년 7월 목성에 아주 가깝게 지나갔고 그 중력으로 인해 처참하게 찢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4도 정도 떨어져 있던 사진이 보는 각도 상의 착각이 아니라 실제로 그만큼 가까웠던 것이다. 목성에 의해 21조각이 나버린 혜성은 가장 큰 덩어리가 약 2km 정도였으며 가장 작은 조각은 수백m 정도로 보였다. 궤도 역시 특이했는데 태양이 아닌 목성을 중심으로 돌고 있었다. 태양을 돌던 도중 목성의 중력권에 붙잡힌 것으로 추정되었는데 다음 접근 때 목성에 충돌하는 것으로 계산되었다. 이는 천문학 관측 역사상 최초로 태양계 천체 간 충돌을 직접 관측할 절호의 기회였다.

갈릴레이 탐사선의 준비중인 모습. 이 탐사선은 성공적으로 목성 탐사를 진행했다.


 준비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1년도 채 되지 않는 준비 기간이었지만 지금이 아주 절호의 타이밍이었다. 1989년, NASA의 목성 탐사선 갈릴레이호가 발사되었다. 1993년 8월 당시, 소행성 아이다를 지나 목성을 향해 다가가는 중이었다. 갈릴레이호는 이번 충돌을 지켜볼 가장 가까운 목격자가 될 예정이었다. 더 먼 곳을 비행 중이던 보이저 탐사선에게도 목성을 주시하라는 미션이 떨어졌다. 그리고 1990년 발사와 동시에 거울에 문제가 생겨 NASA의 골칫거리가 되었던 허블 우주망원경도 준비를 해야 했다. 1993년 12월, 우주왕복선 엔데버호를 타고 올라간 우주인들은 직접 망원경을 수리하는 미션에 들어갔다. 7시간 가까이 걸리는 우주 유영을 5회 넘게 진행한 미션은 대성공이었다. 이제 당시 인류 최고의 기술력이 집약된 모든 눈이 목성을 바라볼 준비를 마쳤다.

충돌 이미지를 지켜보는 STSI(Space Telescope Science Institute) 연구원들의 모습


 그리고 찾아온 7월 16일 밤 20시 경(UTC 기준. 한국 시간 7월 17일 새벽 5시) 약 초속 60km로 날아오던 첫 번째 조각이 목성에 충돌하였다. 이 어마어마한 현상은 약 6일에 걸쳐 일어났다. 직접적인 타격이 일어난 지점은 지구에서 볼 수 없는 목성의 남극 주변부였다. 하지만 지구가 아닌 우주에 떠 있던 탐사선들은 특등석 자리에서 이 현상을 지켜볼 수 있었다. 갈릴레이 탐사선은 최고 2만 3천 도가 넘는 어마어마한 온도와 3000km가 넘는 높이의 구름을 확인했다. 빠르게 자전하는 목성 덕분에 충돌 지점을 곧 지구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가장 커다란 2km짜리 조각이 충돌했을 때의 파괴력은 무려 TNT 600만 메가톤 (당시 지구상에 존재하던 모든 핵무기의 600배 가까이 되는 위력이었다.) 으로 충격 흔적이 지구 크기에 육박했다. 이런 충돌 흔적은 이후 몇 달 동안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목성 표면에 위치한 가장 거대한 소용돌이인 대적점보다 확인이 쉬웠으니 그 흔적이 얼마나 뚜렷했는지 알 수 있었다.

허블 망원경이 촬영한 목성의 충돌 흔적


 6일간의 충돌은 과학계, 특히 행성 과학계에 거대한 지식의 홍수를 가져왔다. 목성은 기본적으로 가스로 구성된 가스행성이다. 가스에 어떠한 물체를 충돌시켰다고 해도 지구처럼 크레이터가 형성될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잔잔한 물에 돌을 던졌을 때 물이 튀어 오르는 것처럼 부서진 혜성 조각이 두터운 목성 대기를 튀어 오르게 할 것이라 예상되었다. 당장 표면에 보이는 가스가 아닌 내부에 있을 구성 성분을 볼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실제 충돌 당시 학자들의 예측만큼 혜성이 깊은 심부까지 파고들지는 못했지만 목성 대기에 새로운 성분을 포착하는 것에는 성공했다. 황화수소나 암모니아 같은 성분이 발견되었으며 물 성분 역시 확인되었다. 혜성 자체가 가지고 있던 물뿐 아니라 목성 자체가 가지고 있던 성분으로 추측되는 물이었다.

갈릴레이 탐사선이 촬영한 목성의 충돌 현장. 충돌 자체는 지구에서 볼 수 없는 곳이었으나 갈릴레이 탐사선은 포착이 가능했다.


 충돌 당시에 생긴 충격 파동 역시 목성 내부를 연구하는 것에 도움을 주었다. 가장 커다란 조각의 충돌 당시 2시간 가까이 파동이 이어졌으며 충돌 영역 근처에서는 오로라가 발생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충돌하는 모습으로 의문의 크레이터 형태의 비밀이 풀리기도 했다. 목성 위성인 칼리스토나 가니메데에 존재하는 기다란 사슬 모양 크레이터가 부서진 조각이 슈메이커-레비 혜성처럼 순서대로 충돌하여 생긴 흔적임을 알 수 있었다. 이는 목성의 중력에 의해 부서진 천체들의 충돌이 여러 번 있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가니메데에서 발견된 사슬형태의 충돌 구덩이


 목성에서 일어난 극적인 변화는 과학적인 연구로 국한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구에 있는 수많은 인류에게 천체 간 충돌에 의한 위험성을 각인시켜 준 계기가 된 것이다. 마침 1994년 충돌이 일어나기 얼마 전인 1990년, 유카탄반도에 위치한 거대한 지형이 운석 충돌구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칙술루브 크레이터라 불리게 된 이 구덩이는 공룡 대멸종의 원인이었던 10km 가량의 소행성이 날아든 흔적이었다. 1992년에는 이론상 예측으로만 존재했던 명왕성 바깥의 카이퍼 벨트 속 천체가 실제로 발견되었다. 1992 QB1이라 지칭된 천체가 발견된 이후 꾸준하게 새로운 소행성이 확인되고 있었다. 이처럼 지구 역시 거대한 충돌이 있었음을 확인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우주 공간 태양계의 끝부분에 수많은 소행성과 혜성이 있는 곳 역시 확인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우주 공간에서 거대한 교통사고를 실제로 확인한 것이다!

최초로 발견된 카이퍼 벨트 천체 QB1


 미 의회는 슈메이커-레비 혜성의 충돌 사건 이후 심각성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까지 우주왕복선에 집중하던 NASA는 혜성이나 소행성 같은 천체가 지구의 실질적 위협이 된다는 점을 인정해야 했다. 충돌 전부터 해당 천체를 찾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외치던 학자들의 의견이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슈메이커-레비 혜성의 충돌이 그야말로 극약 처방 노릇을 했다. 발견자 중 한 명인 유진 슈메이커 박사를 의장으로 하는 근지구 천체 조사 그룹을 만든 NASA는 의회의 지원을 받아 1km 이상의 크기를 가진 천체를 찾는 프로그램에 돌입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 과정에서 대중 매체 역시 근지구 천체에 대한 인식을 올리는 것에 커다란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당시 막 떠오르던 인터넷이라는 도구는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달하기 시작했으며 어쩌면 가장 강력한 문화 파워를 가지고 있을 헐리우드에서 관련 내용을 다룬 영화를 두 편이나 제작했다. 1998년 5월과 7월에 나란히 개봉한 딥 임팩트와 아마겟돈은 둘 다 상당한 흥행을 기록했다. (아마겟돈의 경우 1998년 영화 흥행 순위 2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각각 혜성과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한다는 내용을 다룬 영화의 흥행은 이 천체들이 지구에 충분히 위협이 된다는 점을 사람들에게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에 일조했다. (물론 과학적 고증은 심각한 경우가 많았다. 케롤라인 슈메이커를 비롯한 현직 학자들의 조언을 받은 딥 임팩트와 달리 아마겟돈의 과학적 고증은 심각한 수준이기는 하다.)

딥 임팩트(좌측)와 아마겟돈(우측) 포스터

 우주에서 천체가 천체와 충돌하는 것이 보기 드문 일은 아니다. 당장 목성만 해도 2009년 7월, 태평양 크기의 충돌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고 2023년 8월에도 충돌로 인한 섬광이 발견되었다. 가스행성이 아닌 암석형 행성의 경우에는 충돌 크레이터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당장 달에도 크고 작은 충돌이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슈메이커 레비 혜성만큼 거대한 충돌은 매우 드문 일임에는 분명하다.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충돌에 의한 목성 고리의 교란을 20년 후에도 확인할 수 있었다. 만약 이 혜성이 목성이 아닌 지구를 향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겠는가. 비록 혜성의 부서지기 전 원래 크기가 지구의 공룡을 몰아낸 10km 소행성보다 작은 5km 남짓이었다 하더라도 분명 생태계에 어마어마한 변화를 가져왔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쩌면 우연이었던 슈메이커 부부와 레비의 관측이 만든 나비효과는 30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까지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다. 현재 NASA는 2027년 9월을 목표로 NEO Surveyor라는 이름의 적외선 망원경을 발사할 예정이다. 이 망원경은 140m보다 큰 소행성을 탐지하고 지구 충돌 위험이 있는 천체를 감시, 확인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2017년 1월, 소행성 등 자연 우주물체의 추락, 충돌에 의한 위협을 재난 및 안전 관리 기본법으로 지정하고 우주감시실을 운영하여 위험 물체들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공룡은 소행성이 와도 막을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인류는 달라야 한다. 우리 역시 지구를 지배한 과거의 종족이 되지 않으려면 계속 긴장하며 하늘을 쳐다봐야 한다. 언제 목성에 벌어진 교통사고가 우리에게 벌어질지 모른다. 우주 공간 수많은 총알이 날아드는 태양계 안에서 우리를 보호할 첫 번째 단계는 ‘보고, 찾고, 예측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슈메이커-레비 혜성의 희생으로 알게 된 방어법의 시작일 것이다.

지구로 다가오면서 부서지는 천체의 이미지. 우리는 이런 일을 미리 예측하고 예방할 필요가 있다.

참고자료

  1. 임명신 외. 2022. 스페이스 오페라. 반니
  2. 에릭 M. 콘웨이 외. 2022. A HISTORY OF NEAR-EARTH OBJECTS RESEARCH. NASA
  3. NASA Science Editorial Team. 2019. The Lasting Impacts of Comet Shoemaker-Levy 9. NASA
  4. 하이디 하멜. 2019. What the Shoemaker-Levy 9 Impact Taught Us. AURA
  5. 엘리자베스 하웰. 2018. Shoemaker-Levy 9: Comet’s Impact Left Its Mark on Jupiter. SPACE.COM
  6. 제인 그린. 2019. Impacting Jupiter: the story of Comet Shoemaker-Levy 9. BBC Sky at night magazine
  7. 이병철. 2023. 목성에 충돌한 소행성…강렬한 섬광으로 관측됐다. 조선비즈
  8. 폴 솅크 외. 2018. Discovery of Comet Shoemaker-Levy 9 and Its Impact Into Jupiter 25 Years Later. Lunar and Planetary Institute
  9. NASA Hubble Mission Team. 2019. How Historic Jupiter Comet Impact Led to Planetary Defense. N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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