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푸스의 아버지 제우스신이 한낮을 밤처럼 만들고 빛나는 태양을 가려버리면서 더 이상 놀랄 것도 없다. 이제 두려움이 사람들을 덮쳤다.
아르킬로코스(Archilochus)
그리스 시대 최초의 서정 시인이라 불리는 아르킬로코스가 쓴 시의 한 구절이다. 글에서 보이는 것처럼 일식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일식은 오랜 과거부터 사람들이 보기에 이상하고 두려운 현상이었다. 그에 비해 지금, 일식은 여전히 매우 신비한 현상이지만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은 아니다. 마침 다음 달 4월 8일. 북아메리카 대륙에 일식이 일어날 예정이다. 비록 미국으로 떠나 일식을 직접 보지는 못하겠지만 오랜 과거부터 이어져 온 ‘일식’에 대해 알아보면서 그 아쉬움을 달래보도록 하자.
일식이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일식이란 달이 태양을 가리는 현상을 말한다. 지구는 태양을 돌고 있고 달은 지구를 돌고 있다. 이렇게 궤도를 돌고 있는 천체가 절묘하게 태양-달-지구 순서의 일직선상에 위치할 때 우리는 일식 현상을 만날 수 있다. 크기가 어마어마하게 큰 태양을 달이 가릴 수 있는 이유는 거리가 무척 가깝기 때문이다. 우리가 눈앞에 주먹을 대고 있으면 멀리 있는 거대한 빌딩도 가릴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하지만 같은 이유 때문에 일식의 지속 시간은 매우 짧은 편이다. 주먹을 살짝만 움직여도 눈앞에 가려진 건물의 모습이 보인다. 마찬가지로 달 역시 조금만 움직여도 거대한 태양의 모습이 다시 보이게 된다. (보통 태양이 완전히 가려지는 개기일식의 경우 지속 시간이 3분~7분 내외 정도 이어지는 편이다.)
일식의 종류는 가려지는 정도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달이 태양을 완벽하게 가려버리는 경우는 개기일식이라 부른다. 반대로 달의 일부분만 가려지게 되는 경우는 직관적으로 부분일식이라 부른다. 이외에 특이한 경우가 존재하는데 ‘금환일식’이라 불리는 경우이다. 이는 달과 지구 사이의 거리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타원 궤도로 지구를 도는 달은 거리가 가까울 때와 멀 때의 차이가 4만km가 넘는다. 이때 지구에서 보이는 달의 시직경 크기가 13% 이상 달라진다고 하니 그 격차가 상당하다. 이 이유 때문에 일식 때 달이 태양을 완벽하게 가리지 못해 테두리 부분이 남게 된다. 이를 금색 고리처럼 보인다 하여 금환일식이라 부르게 되었다.
일식은 어떻게 예측하는가?
이런 일식은 현재 언제 일어나게 될지 과거에 언제 일어났을지 예측이 가능하다. 당장 아직 다음 달 8일이 오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날 개기일식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그렇다는 것은 우리가 일식이 언제 어느 위치에서 일어날지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과거부터 쌓여 온 수많은 관측자료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태양이 하늘에서 사라진다는 점에서 일식은 고대인들에게 상당히 충격적이고 무서운 사건이었다. 그런 이유로 아주 오래전부터 일식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는데 인도의 고대 성전인 리그베다에도 남아있으며 이집트 신왕조 시대의 점토판에도 묘사되어 있다. 동양권에서는 중국에 있는 기록이 가장 오래되었는데 기원전 2137년 10월 22일의 일식 관측 내용이 있다. 이 당시 천문 관원들이 근무 태만으로 해야 했던 일을(하늘을 향해 활을 쏘며 북을 쳐야 하는) 하지 않아 분노한 왕이 이들을 사형에 처했다는 내용이다. 일식 현상을 용이 태양을 잡아먹는 것이라 생각한 당대의 생각 때문에 이러한 행위를 벌여 불길함을 떨쳐내야 했던 모습이라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역시 일식 기록이 삼국사기에도 적혀 있는데 조선시대에는 일식이 일어나는 날짜를 계산하여 미리 알리기도 했다. 해당 날짜에 정확하게 일식을 예측하는 것은 왕의 권위와도 관련이 있었다. 이 때문에 세종대왕이 다스리던 1422년 1월 23일 일식 때 예측 시간보다 약 14분가량 늦게 일어나자 담당자를 곤장형에 처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렇게 분 단위 이하로 일식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기록을 바탕으로 수학적 계산이 필요했다.
기원적 약 2500년 전 바빌로니아인들은 이미 일식이 달이 태양을 가리는 현상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꾸준한 관측을 통해 일식에 (물론 이 기록은 월식도 포함하고 있다.) 특이한 주기가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지구에서 일식이 천구 상 동일한 위치에서 일어나는 일이 18년 11일 8시간 정도라는 것이다. 이 주기를 사로스 주기라 부른다. 신기한 것은 이 사로스 주기에 따라 하늘에서 같은 장소에 달과 태양과 지구가 만난다 쳐도 그 현상을 볼 수 있는 지구 위의 위치는 계속 변한다는 점이다. 주기의 마지막에 붙은 8시간 때문에 자전이 더 일어나 다른 지역에서 일식 현상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즉 다른 지역에서 일어난 일식을 모두 취합해야 이 주기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관측을 통해 주기를 알았다 해도 정확한 시간까지 예측하기 위해서는 달의 궤도와 태양을 도는 지구의 궤도에 대한 이해가 충분해야 한다. 고대적, 모든 위성과 행성의 궤도를 원으로 알고 지구가 태양계의 중심이라 알고 있던 시기에는 예측은 성공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이유를 이해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실제로 달이 공전하면서 태양을 가린다고만 생각하면 일식은 달이 공전하는 주기인 약 1달마다 한 번씩 벌어져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달의 공전 궤도면과 태양이 지나는 면이 5도 정도 기울어져 있어 이런 현상은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두 궤도면이 만나는 교점에서 일식을 확인해야 하는데 태양과 달이 각각 그 교점에서 만나는 시기를 계산해야 한다. 이런 어려운 점 때문에 사로스 주기의 원리를 제대로 파악한 사람은 17세기가 되어서야 등장했다. 핼리 혜성으로 유명한 영국의 천문학자 애드먼드 핼리가 그 주인공이었다. (사로스 주기라는 명칭을 만든 사람도 핼리였다.)
일식이 과학적으로 의미가 있는가?
자 우리가 일식이 무엇인지 알고 어떤 방법으로 그 시기를 알아내는지도 확인했다. 그렇다면 이제 일식은 단순하게 하늘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끝나는 것일까? 과거 불길하고 두려운 현상이기 때문에 더 신경 써서 관측하고 기록했던 일식을 지금은 신비로운 유희거리로 끝내야 하는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일식 자체는 과학자들에게 또 하나의 연구 기회를 전해준다. 평소에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게 해준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태양은 그 밝기가 어마어마하게 밝아 주변 천체를 완전히 가려버린다. 이는 자기 자신의 대기도 마찬가지인데 태양의 대기인 코로나는 지상에서 개기일식 때 말고는 관측이 불가능하다. 오로지 개기일식이 일어나는 짧은 시간 동안 관측을 해야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태양을 연구하기 위해 개기일식을 이용하다가 특별한 발견으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1868년 8월 18일에 일어난 개기일식을 연구하기 위해 인도에서 관측 중이던 프랑스의 과학자 피에르 장센은 태양 표면에서 관측한 홍염(역시 개기일식 때 관측이 더 수월하다.)에서 지금까지 본 적 없던 스펙트럼 선을 발견했다. 이 선으로 새롭게 알려진 원소에는 태양신의 이름인 헬리오스에서 딴 ‘헬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헬륨 발견 외에도 과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일식이 있었으니 1919년 5월 29일에 일어난 일식이다. 당시 독일에서 근무하던 과학자 아인슈타인의 새로운 이론을 증명하고 싶었던 영국의 천문학자 아서 에딩턴이 일식을 연구에 활용하려 한 것이다. 아인슈타인 이론에 의해 태양 중력으로 휘어진 별빛을 개기일식 때 확인하려 한 것이다. 마침 황소자리 부근에 위치한 태양 근처에는 히아데스성단 등 확인용으로 사용할 별이 많았다. 두 팀으로 나눠진 일식 원정대는 악천후를 뚫고 몇 장의 사진을 건졌고 이 일식으로 인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수면 위로 떠올라 인류 역사에 손 꼽히는 과학 연구로 남게 되었다.
이번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일어날 개기일식은 약 2분에서 4분 가까이 지속될 예정이다. 거의 대륙을 관통하는 형태로 이어져 관측이 가능한 곳이 많은 편이다. (평소 일식이 대부분 바다에서 일어난다는 점을 생각하면 관측하기엔 좋은 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저 먼 대륙에 가지 않으면 개기일식을 볼 수 없을까? 그렇지 않다. 당장 한반도에서는 2030년 6월 1일 부분일식이 예정되어 있으며 개기일식은 2035년 9월 2일에 일어날 것이다. 물론 우리가 관측 가능한 곳이 강원도 고성군 일부 지역에만 한정되어 있지만 미 대륙보다야 나은 편 아닌가. 다음 달 있을 일식을 직접 볼 수 없다면 사진으로라도 눈에 잘 담아두자. 11년 뒤 직접 보게 될 개기일식과 비교할 좋은 자료로 삼으면 되지 않을까.
참고자료
- 마이클 벤슨(지웅배 역). 2024. 코스미그래픽, 인류가 창조한 우주의 역사. 롤러코스터
- 고호관. 2009. 수학으로 하늘의 뜻을 알다. 수학동아
- 원호섭. 2017. [Science &] 과학자들은 왜 개기일식에 흥분할까. 매일경제
- 조호진. 2008. [사이언스 in 뉴스] 세종대왕의 실수?. 조선비즈
- 박성원. 2024. [더 한장] 우주쇼 ‘개기일식’ 4월에 펼쳐진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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