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1월달 어린이천문대 주제 중에는 ‘외계생명체를 찾아서’라는 이름의 주제가 있다. 외계생명체와 외계인, 생명체의 조건, 외계행성 탐사 등 다양한 내용을 다루는 파트인데 당연히 아이들 역시 주제가 주제인 만큼 상당히 흥미로워하는 부분이다. 그렇게 외계인과 외계생명체의 차이점을 알려주고 외계행성 탐사 방법 등을 설명하면서 평소처럼 수업을 하던 중 학생에게 아주 인상적인 질문을 하나 받게 되었다.
“선생님! 우주에서 태어나면 외계인이 되는 건가요?“
수업을 하면서 정말 다양한 질문을 듣게 되지만 대부분은 장난 식으로 웃기기 위해 질문을 던지거나 주제와 전혀 상관없이 평소에 자기가 궁금했던 내용을 물어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간간이 허를 찌르는 질문을 듣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질문이 바로 그런 케이스였다. 과연 이 질문에 대답을 하려면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인가?
우주에서 임신을 할 수 있을까?
아이가 태어나려면 먼저 수정부터 되어야 한다. 그 후에도 평균 10개월가량의 임신 기간을 지나야 세상의 빛을 만날 수 있다. 이처럼 긴 과정을 거치는 만큼 조심해야 하는 것 역시 많아진다. 인간에게 익숙한 지구 환경에서도 식생활, 생활 습관 하나씩 다 신경 써야 하는 시기가 임신 기간인데 이 기간을 우주에서 보낸다면 과연 건강한 아이가 태어날 수 있는 것일까.
혹독한 우주 환경은 기본적으로 태아에게 위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현재 미연방 항공청은 임신한 여성의 비행 시 방사능 피폭량을 한 달에 0.5mSv(밀리시버트) 이하로 권장한다. 사실 지구에서 비행을 했을 경우 이 기준보다 한참 낮은 양의 방사선에 노출되기 때문에 특별한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다만 우주에 올라갔을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ISS 국제 우주정거장에서 하루 평균 피폭되는 방사선량이 0.5~1.2mSv로 알려져 있다. 한 달 치 분량을 하루에 넘겨버릴 수 있는 것이다.
2015년 진행된 스콧, 마크 켈리 쌍둥이 실험 결과에서도 우주 정거장에 있던 동생 스콧과 지구에 남은 형 마크의 인체에 유의미한 변화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DNA 손상 및 변화, 인지 능력 감소, 장내 미생물 수치 변화 등등) 물론 지구 귀환 후 정상적으로 돌아온 수치가 많았지만 건강한 성인 남성으로 진행된 실험에서도 이런 결과가 나왔다면 태아에게는 더 치명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건 당연한 결론일 것이다.
이런 문제점은 동물 실험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확인되었다. 소련의 미르 우주정거장에서 도롱뇽 알과 메추리알을 이용한 배아 실험이 있었으며 이 결과 메추리는 부화에 실패하였고 도롱뇽에서는 변형이 일어난 것을 확인했다. 미국 역시 콜롬비아 우주왕복선에서 임신한 쥐의 태아를 이용한 실험을 진행했었다. 그 결과 배아의 발달을 확인하지는 못했다. 그나마 가장 최근인 2021년, 일본 연구팀이 진행한 쥐 배아세포 실험에서는 긍정적인 결과를 얻는 것에 성공했다. 임신한 암컷 쥐에서 추출한 배아세포를 냉동시켜 국제 우주정거장에 보낸 연구팀은 우주 공간에서 시간을 보낸 배아가 어떤 상태일지 연구했다. 그리고 배아가 정상적으로 성장했음을 확인하였다. 아직 초기 단계 배아이기는 하지만 동물 실험에서 최초로 포유류의 배아를 성장시켰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다시 돌아와서 인간은 어떻게 될까. 아무리 제약 실험 등 여러 생물학적 실험의 시작이 생쥐 같은 동물이라고 해도 결국 인간에게 적용되려면 더 많은 과정이 지나야만 한다. 하지만 우주에서 그 실험을 이어 나가기엔 윤리적 문제가 큰 걸림돌로 남아있다. 과연 인간의 배아를 이용하여 우주정거장에서 실험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최소한 미성년자를 우주에 보내 성인과 달리 어떤 신체적 변화를 보일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은 단순히 기술적인 장벽보다 도덕적, 윤리적 장벽을 넘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우주에서 태어나면 어느 나라 사람일까?
아주 힘든 과정을 거쳐 결국 아이가 태어났다고 가정하자. 이제 남은 문제는 이 아이는 어느 나라 사람이 되냐는 것이다. 국적을 판단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 기준이 있다. 첫 번째는 속인 주의이다. 어디에서 태어나건 부모의 국적을 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속지주의라고 불리는 방법도 있다. 이는 부모 국적과 상관없이 출생지를 관할하는 국가의 국적이 되는 것이다. 속인주의를 따르는 대표적인 나라로 우리나라를 뽑을 수 있으며 속지주의를 따르는 나라로는 미국이 있다.
그렇다면 간단하게 우주가 아닌 비행기에서 태어난 아기로 생각해 보자. (물론 실제로 이런 일이 생길 가능성은 매우 낮다.) 아무리 비행기에서 태어났더라도 부모가 한국 국적일 경우 그 아기는 한국 국적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태어난 당시 비행기가 미국 상공을 날고 있었다면? 아이는 미국 국적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 가끔 더 복잡한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항공기의 등록 국가를 기준으로 국적을 받는 기국주의까지 합쳐져 한 아이에게 순식간에 3개의 국적이 생길 수도 있다.
당장 비행기에서도 이런 복잡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우주라고 다를 것인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1967년 발효한 우주조약 2조에는 ‘달과 기타 천체를 포함한 외기권은 주권의 주장에 의하여 또는 이용과 점유에 의하여 또는 기타 모든 수단에 의한 국가 전용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라고 쓰여 있다. 이 조항에 따르면 우주 공간에서 각 나라의 ‘영토’란 인정될 수 없다. 그렇다면 속지주의를 고려 대상에서 뺄 수 있지 않을까?
선택지 중 하나가 빠졌다고 해도 여전히 남아있는 문제점이 있다. 같은 우주조약 8조에 따르면 외기권에 발사된 물체의 등록국에게 해당 물체와 인원에 대한 관할권과 통제권이 주어진다. 그렇다면 우주에 ‘영토’는 없어도 우주선 또는 우주 기지는 해당 나라의 영토와 다를 바 없는 상태인 것이다. 결국 속지주의는 부활했다! 한국 우주비행사가 미국 우주선을 타고 날아가다가 아이를 낳게 된다면 역시 두 가지 국적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경우는 어쩌면 지구상에서 남극이나 바다 위, 비행기에서 태어나는 경우와 큰 차이가 없을 수 있다.
우주로 사람을 보내는 시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세상은 15세기 언저리의 대항해 시대나 19세기 말의 남극 탐험 시대처럼 새로운 세상을 탐험하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고작 지구 근처 구역이고 기껏해야 달 정도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인류 역사상 그 어떤 탐험보다 더 멀고 거대한 공간으로 이제 막 발을 들여놓은 상태이다. 앞으로 더 먼 곳으로 인류의 발걸음을 옮기려면 생각보다 거쳐야 할 관문이 많이 남아있다.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뿐 아니라 위에 언급되었던 법적인 문제 역시 그 관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우리는 저 먼 지구를 떠나 저 먼 우주에서 태어나고 우주에서 생활할 사람을 ‘국적’이라는 틀로 묶을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더 크게 ‘지구인’이라는 틀로 묶는 것이 타당할 것인가? 당장은 생각하기에 너무 먼 이야기일지라도 언젠가는 우리 앞에 이 질문의 답을 내야 할 순간이 다가올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저 먼 우주에서 찾아온 외계인이 아니라 우리에게서 벗어난 다른 세상에서 태어난 이들을 ‘외계인’이라는 이름으로 먼저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참고자료
- 이철민. 2022. 인류는 우주에서 ‘사랑’할 수 있을까. COSMOS TIMES
- 박건희. 2023. 우주에서도 포유류 배아세포 자랐다…실험 성공. 동아사이언스
- 최인준. 2023. 우주에서 임신, 출산 가능해지나. 조선일보
- 김형자. 2023. “우주에서 체외수정” 2031년 ‘우주 아기’ 탄생한다. 주간조선
- 백봉삼. 2018. 달에서 태어난 아기는 어느 국적을 갖게될까. ZDNET Korea
- 앰버 조르겐슨. 2019. Can Humans Have Babies in Space?. DISCOVER
- 나디아 드레이크. 2018. Can humans have babies on Mars? It may be harder than you think. NATIONAL GEOGRAPHIC
- 김정은. 2019. NASA가 쌍둥이 연구로 밝혀낸 우주체류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THE DAILYPOST
- 정홍현. 2016. 우주에서 임신을 금지시킨 이유. 나로우주과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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