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1년 1월 1일 새해가 찾아왔다. 그리고 그때 이탈리아 팔레르모 천문대에서 관측을 하고 있던 주세페 피아치의 눈에 이상한 천체가 포착되었다. 다른 별을 배경으로 삼아 움직이는 천체였는데 피아치는 이 천체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임을 확신했다. 무려 두 번이나 지위가 바뀐 기구한 운명의 왜소행성 ‘세레스’의 발견 순간이었다.
고대부터 별들 사이를 움직이는 이상한 천체들인 행성은 많은 사람에게 특별한 지위를 부여받고 있었다. 각 행성의 움직임에는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었으며 이를 이용하여 운명을 점치기도 했다. 당시에 알려진 행성인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다섯 천체에는 동양에서는 음양오행의 뜻이 포함되었으며 서양권에서는 그리스 신화 속 신의 이름이 붙게 되었다. (지금도 각 행성의 영어 이름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의 이름과 동일하다.)
이렇게 특별한 행성을 연구하는 것은 당연히 천문학자들의 중요 업무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 속에는 우주의 아름다운 규칙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 과학자가 있었다. 저명한 천문학자였던 요하네스 케플러는 행성의 궤도 주기와 반지름의 아름다운 규칙을 발견하여 조화의 법칙이라 불렀으며 그 내용이 담긴 책의 제목을 <세계의 조화>라 불렀다. 그는 우주에서 아름다운 규칙을 찾고 싶어 했다. 그런 그가 상당히 불만스러웠던 것이 있으니 바로 화성과 목성 사이 거대한 빈 공간이었다.
태양에서부터 거리 (태양과 지구 사이 거리를 1이라 할 경우)
수성 : 0.39
금성 : 0.72
지구 : 1
화성 : 1.52
목성 : 5.2
토성 : 9.54
거의 붙어있는 수성에서 화성까지 행성에 비해 목성까지 거리는 눈에 띌 정도로 순식간에 멀어져 있다. 케플러는 그 공간에 너무 작아 볼 수 없는 행성이 있다고 가정한 경우도 있으니 이 틈의 불편함이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행성의 거리에도 어떠한 비밀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 학자는 계속 있어 왔다. 그중 수학적으로 규칙을 제대로 나타낸 사람은 1766년, 독일의 천문학자 요한 티티우스였다. 그는 아주 간단한 수열을 하나 만들어냈다. 첫 숫자를 0, 다음 숫자를 3, 그리고 그다음 숫자부터는 앞의 항에 2를 곱한다. 이 방식으로 0, 3, 6, 12, 24, 48, 96, 192… 라는 수열이 나온다. 이 숫자들에 모조리 4를 더하면 티티우스 수열이 완성된다. 이 수열을 행성과 거리에 대입하면 신기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숫자의 배열이 비슷해졌다. 하지만 문제는 남아있었다. 여전히 화성과 목성 사이 빈 공간이 말썽이었다. 티티우스의 수열은 큰 관심을 받지 못했고 서서히 잊혀지고 있었다. 그 와중에 1772년. 또 다른 독일의 천문학자 요한 보데는 이 규칙을 중요하게 여겨 공론화 시키게 된다. 티티우스-보데 법칙의 탄생이었다. 증명이 없는 경험 법칙인데 빈틈이 있는 관계로 보데의 노력이 있었지만 아직 제대로 된 빛을 보기는 어려웠다. 티티우스-보데 법칙에 광명을 찾아 준 사람은 영국의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이었다.
1781년. 윌리엄 허셜과 그의 동생 캐롤라인 허셜은 직접 만든 망원경을 이용하여 이상하게 움직이는 천체를 하나 발견하게 된다. 최초 혜성이라 보고된 이 천체는 다른 천문학자들의 검증 끝에 혜성이 아닌 행성에 가깝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이것이 고대 5행성의 틀을 깬 최초의 행성인 천왕성의 발견이었다. 그런데 새롭게 발견된 천왕성의 궤도 반지름을 계산하니 티티우스-보데 법칙의 숫자 196과 가까운 192 정도로 나타난 것이다. 저 뒤편에 파묻혀 있던 법칙이 하늘 위로 떠올랐다. 이 법칙이 맞는 법칙이라면 화성과 목성 사이 비어있는 공간에 분명히 행성이 있어야 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허셜이 천왕성 발견으로 엄청난 부와 명성을 얻게 되었으니 그다음 영광을 얻을 기회였다. 허셜 남매는 우연히 발견했지만 티티우스-보데 법칙만 있다면 사실상 거리에 대한 답안지가 있는 상태였다. 독일의 천문학자 빌헬름 올베르스를 필두로 여러 과학자가 모여 하늘의 경찰이라는 이름의 모임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 각 멤버들이 하늘의 일부 지역을 담당하여 탐색을 하려 한 것이었다. 이 계획에 포함된 인물만 24명이며 법칙을 알린 보데, 천왕성의 발견자 허셜, 프랑스의 천문학자 메시에 등이 속해 있었다. 이 계획의 초대장은 이탈리아의 피아치에게도 전해지고 있었다.
이 모임으로 초대하겠다는 연락이 미처 도착도 하기 전에 피아치가 1월 1일. 먼저 의문의 천체를 발견한 것이다. 이제 해당 천체의 궤도를 계산하고 과연 정체가 뭔지 밝혀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정작 이 천체를 발견한 피아치가 병에 걸려 앓아눕고 만 것이다. 피아치는 먼저 이 천체를 혜성이라고 발표하였다. 다만 동료 천문학자들 (그중에 보데도 포함되어 있었다.)에게 보냈던 편지에는 혜성이 아니라 다른 천체일 가능성이 있다고 표현하고 있었다.
피아치의 편지는 당시 유럽에서 진행되던 나폴레옹 전쟁에 의해 전달이 늦어져 3월에야 보데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보데는 이 천체가 새로운 행성이라 믿었다. 피아치가 관측한 40일 정도의 기록을 분석하여 궤도를 알아내야 했다. 그해 7월에 공개된 관측 데이터는 궤도 계산에 이용하기에 상당히 부족했다. 기본적으로 태양계 행성의 궤도 계산은 여러 가지 변수가 들어간다. 당장 지구가 같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지구의 위치와 다른 행성의 위치를 같이 고려해야 한다. 각 궤도 역시 타원궤도이며 형태가 조금씩 다른 점도 계산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었다. 이것을 감안하면 40일 정도의 관측 후 태양 뒤로 사라져버린 천체의 궤도를 알아내는 것은 상당히 심각한 문제였다.
이 와중에 피아치는 천체의 이름에 시칠리아 섬의 수호신이자 로마 신화 속 농업의 여신인 세레스의 이름을 붙인다. (세레스는 그리스 신화 속 데메테르와 같은 취급을 받는다.) 이름까지 지어져 행성이라고 모두가 생각하고 있던 천체를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상황. 오일러, 라그랑주, 라플라스 등 당대 내로라하는 뛰어난 수학자들이 뛰어든 이 문제는 좀처럼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때 혜성처럼 나타나 세레스를 구해낸 사람은 24살의 젊은 수학자 프리드리히 가우스였다.
가우스는 이미 천체의 운동을 계산할 뛰어난 무기를 만들어 낸 상태였다. 지금은 최소제곱법이라 불리는 이 방식은 관측이나 실험으로 얻은 자료를 설명하는 식을 찾아내는 경우에 아주 유용한 방식이다. 실험과 관측은 필연적으로 오차가 따라온다. 이 오차를 감안하여 구체적인 식을 만들어내는 방식인데 가우스는 이 방식을 세레스의 궤도 계산에 사용한 것이다. 가우스가 계산한 결과값은 1801년 12월에 발표되었는데 다른 학자들의 예측 결과와 상당히 다른 값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예측 값은 여러 개가 쌓였다. 태양 뒤에서 튀어나올 세레스가 어느 위치에서 모습을 보일지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12월 7일. 바로 가우스가 예측한 위치에서 세레스가 다시 나타났다.
새로운 행성으로 화려하게 등장한 세레스의 영광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당장 1802년 3월. 올베르스가 비슷한 궤도에서 또 다른 천체인 팔라스를 발견한다. 윌리엄 허셜은 당장 두 천체의 모습이나 크기가 행성이라고 하기에 부족하지 않냐는 언급을 하게 된다. 이때 등장한 단어가 ‘별과 유사한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 ‘asteroid’. 소행성이었다. 물론 이 제안이 바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1807년까지 팔라스에 이어 주노, 베스타라는 이름의 천체까지 발견되었다. 모두 비슷한 궤도를 가지고 있었지만 학자들은 이 천체를 모조리 행성이라 칭했다. 아직은 티티우스-보데 법칙 속 5번째 위치는 위태로운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다.
결국 1846년. 천왕성 바깥에서 새로운 행성이 발견되면서 티티우스-보데 법칙은 카운터 펀치를 맞고 말았다. 법칙 속 궤도 예상치와 실제 해왕성의 궤도가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었다. 여기에 1851년까지 10개 이상의 천체가 세레스 궤도에서 무더기로 발견되자 더 이상 이 작은 친구들을 행성이라 부를 당위성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허셜이 제안한 소행성이라는 단어가 세레스와 친구들에게 붙게 되었다. 과학자들이 그렇게 채우고 싶어했던 화성과 목성 사이는 행성이 아닌 소행성대가 자리 잡았다.
티티우스-보데 법칙은 과연 단순하게 숫자놀음일 뿐이었을까. 물리적인 근거가 없이 만들어졌던 이론은 이 이전에도 있었다. 당장 케플러가 만든 행성의 운동 법칙도 만들 당시에는 관측 기록을 바탕으로 만든 경험 법칙이었다. 다만 이 경우는 이후 뉴턴에 의해 물리적인 근거가 마련되었다면 티티우스-보데 법칙은 그렇지 못했다.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재미있는 사실은 이렇게 무너져 내린 법칙을 바탕으로 유의미한 성과를 얻었다는 것이다. 티티우스와 보데가 만든 숫자는 세레스의 발견을 낳았고 소행성이라는 새로운 체계를 만드는 것의 시작이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수학이 발전하였으며 태양계에 대한 생각이 고대부터 만들어져 있던 틀을 벗어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미 얻은 결과를 바탕으로 해석을 하고 예측을 하는 것. 예측을 증명하는 것. 이 모든 것은 과학을 하는 과정에 포함된다. 우리는 항상 모든 내용이 채워진 결과판을 받을 수는 없다. 언제나 그렇듯 그 빈칸을 채우고 예측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많은 숫자가 우주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비록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단순한 우연일지라도 그 안에서 무언가를 찾으려는 노력 자체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그것은 해보지 않고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참고자료
- 닐 디그레스 타이슨(김유제 역). 2019. 명왕성 연대기. 사이언스북스
- 마이크 브라운 (지웅배 역). 2021. 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나. 롤러코스터
- 류쉐펑 (이서연 역). 2023. 복잡한 세상을 이기는 수학의 힘. 미디어숲
- 엘리자베스 랜다우. 2016. Ceres: Keeping Well-Guarded Secrets for 215 Years. NASA JPL
- 최은미. 2010. 수학산책: 최소제곱법. 지식백과
- 정재호. 2021. 케플러의 환상과 “세계의 조화”. HORIZ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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