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발전시키는 질문 – 천문학 역설 이야기 1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정호승 시인의 시 <슬픔이 기쁨에게> 중에서

 역설(paradox). 우리는 이 단어를 어린 시절 국어 교과서에서 어렵지 않게 마주할 수 있었다. 당장 위에 쓰인 시 ‘슬픔이 기쁨에게’에도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이라는 얼핏 보면 이상한 문구가 ‘시’라는 창구를 통해 아름다운 문장으로 읽히게 만들고 있다. 이처럼 역설은 이치에 맞지 않는 표현을 통해 중요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도구로 종종 사용되어 왔다.

 실제로 paradox라는 영어 단어 역시 ‘반대’,‘넘어선’이라는 뜻의 para와 ‘의견’, ‘생각’이라는 뜻의 dox라는 그리스어를 어원으로 삼고 있다. 반대의 의견, 일반적인 것을 넘어선 의견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역설은 문학의 범위가 아닌 다른 곳으로 이동했을 경우 약간의 문제를 담게 된다. 역설 속에 있는 것을 잘 살펴보면 정당해 보이는 추론 과정을 거쳐 절대 있을 수 없는 결론을 만들어 낸다. 대표적으로 논리학에서 사용하는 ‘거짓말쟁이의 역설’이라고 알려진 문장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문장은 거짓이다.’

 이 말을 해석해 보면 이상한 결말에 도달하고 만다. 이 말이 참이라고 한다면 ‘문장은 거짓이다.’라고 했기 때문에 ‘거짓’이 되어버린다. 이 말이 거짓이라고 생각한다면 ‘문장은 거짓이다’가 맞는 말이 되어야 한다. 마치 꼬리물기처럼 해괴한 상태가 되어버린다. 철학과 논리학에서는 이 같은 역설의 답을 찾기 위해 오랜 기간 수학과 철학 등의 무기를 이용하여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펜로즈의 삼각형.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영국의 로저 펜로즈가 고안한 도형으로 3차원 세계에서 존재할 수 없는 도형이다. 유명한 시각적 역설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역설은 전혀 해석이 안 되는 이상한 결론을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 속에 또 다른 발전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그 기능은 당연히 천문학에서도 통용되어 왔다. 과연 천문학 역사 속에서 어떤 역설이 그 발전에 도움을 줬을까.

벤틀리의 역설 뉴턴의 우주는 붕괴하는가?

 아이작 뉴턴이 프린키피아를 출간하면서 과학의 혁명이라는 거대한 바람이 불던 시기. 영국의 신학자인 리처드 벤틀리는 1692년. 뉴턴에게 편지를 보내게 된다. 그리고 이 편지는 뉴턴을 아주 깊은 고민 속에 빠트리고 말았다.

벤틀리의 초상화


 ‘만약 중력이 잡아당기는 인력으로만 작용하는 것이 맞는다면 유한한 우주에서는 모든 별이 서로를 잡아당겨 언젠가는 하나의 중심으로 모여 붕괴할 것이다. 반대로 우주가 무한할 경우에는 별 역시 무한 개의 숫자가 있을 것이며 각 별에 주어지는 중력도 무한대의 힘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별은 사방에서 당겨지는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찢어질 것이다.’

 벤틀리의 의견은 뉴턴의 중력 이론에 의하면 우주가 유한하건 무한하건 상관없이 그 결말이 끔찍한 파괴의 순간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뉴턴은 자신의 이론으로 미래가 위태로워진 우주를 지켜야 했다. 뉴턴의 생각은 벤틀리에게 보낸 답장에 나타난다.

 ‘무한한 우주에서 각각의 방향에서 주어지는 힘은 서로 정확하게 균일하다. 따라서 그 힘은 모두 상쇄되어 균형을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정적이고 무한한 우주가 유지될 수 있다.’

 이 말대로라면 뉴턴은 우주를 아주 얇고 날카로운 송곳 위에 올려놓은 꼴이 되었다. 서로 절대적인 균형을 이룬 상태이기 때문에 아주 작은 변화에도 이 우주는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뉴턴 역시 본인의 해결책이 상당히 빈약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이 답장은 ‘신의 전지전능한 도움’이 우주를 안정적으로 유지시켜주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아이작 뉴턴의 초상화


 그렇다면 뉴턴의 답변이 벤틀리 역설의 해답이 맞는 것일까? 그럴 리 없다. 벤틀리 역설에 대한 제대로 된 답변을 하기 위해서는 뉴턴의 시대를 지나 아인슈타인까지 건너와야 했다.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을 통해 중력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갈 때 그 역시 오래전 벤틀리가 던진 질문을 마주하고 말았다. 그의 이론대로 계산했을 때 우주가 수축하거나 팽창해야만 했던 것이다. 정적인 우주를 선호했던 아인슈타인이 우주상수라는 것을 추가하여 우주의 팽창을 막아내려 했지만 그 노력과 상관없이 수많은 관측 결과는 끊임없이 커져가는 우주로 나타났다.

암흑에너지와 암흑물질의 비율. 우리가 알고 있는 물질은 고작 5% 정도에 불과하다. 저 많은 암흑에너지가 중력을 이기고 우주를 팽창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다행히도 우주는 벤틀리의 말처럼 끔찍한 결말을 마주할 필요가 없어졌다. 팽창우주론으로 인해 끊임없이 커지는 우주는 은하 사이의 간격을 점점 더 넓혀갔다. 그리고 그 원동력이 되는 정체불명의 에너지인 암흑 에너지가 중력이라는 힘을 막아서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내게 되었다.

올베르스의 역설 우주가 검은색이면 안 된다?

올베르스의 초상화

 1823년. 독일의 천문학자인 하인리히 올베르스는 특이한 질문이 담긴 책을 출간하게 된다. 사실 이미 그보다 전부터 학자들 사이에서 고민거리였던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만일 우주가 무한하고 크고 균일하다면. 밤하늘의 어느 방향을 봐도 무한하게 많은 별이 보여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눈은 하늘의 어떤 방향을 보더라도 그 무한한 별에서 나온 무한한 빛이 보여야 한다. 이 상황에서 왜 우리는 어두컴컴한 밤하늘을 보고 있는 것일까?’

 그 유명한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는 이 질문을 ‘우주는 유한하기 때문에 질문 자체가 틀렸다.’라고 결론 내려버렸으며 올베르스 본인은 우주에 존재하는 먼지나 가스층이 빛을 흡수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우주 공간에서 가스와 먼지는 빛을 흡수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를 성간 소광이라 부른다.) 하지만 오랜 기간 빛을 받은 가스 덩어리는 발광성운이 되어 또 다른 빛을 뿜어내게 된다. 그렇다면 이 결론도 제대로 된 해답이 되지 않는다.

NGC2264 크리스마스트리 성운 (촬영자: 의왕어린이천문대 호빗쌤). 붉은색으로 보이는 발광성운이다.


 이 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해결책을 처음 제시한 사람은 물리학자도 아니고 천문학자도 아닌 소설가였다. 그 주인공은 최초의 추리소설가로 유명한 에드거 앨런 포였다. (물론 그는 아마추어 천문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산문시집 ‘유레카’에서 올베르스 역설 해결을 위한 멋진 통찰력을 보여준다.

에드거 앨런 포의 사진.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너무나 아름다워 틀릴 리가 없다고 언급하였다.


 ‘별이 무한하게 많다고 해도 그 별빛이 지구에 도달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우주 공간의 대부분이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아직 방출된 빛이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답변은 무려 우주가 무한하고 영원한 존재라는 당시의 일반적인 생각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내용이었다. 아직 먼 곳의 빛이 도달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우주의 나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당연히 에드거 앨런 포의 이런 주장은 커다란 반응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그의 주장처럼 우주가 나이가 있다는 사실은 80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 허블이 우주의 팽창이라는 증거를 가져오면서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유클리드 망원경이 촬영한 페르세우스 은하단의 모습. 허블은 이러한 은하들이 멀리 있을수록 더 빠르게 우리로부터 멀어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1929년 허블의 발견으로 인해 은하 사이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때 지구에서 멀리 있는 천체는 강한 적색편이를 보여주는데 이 경우 빛의 파장이 늘어나 사람이 볼 수 있는 가시광선 영역이 아닌 적외선, 전파 영역으로 바뀌게 된다. 거기에 우주 팽창의 속도는 우리로부터 멀리 떨어질수록 훨씬 빨라진다. 그로 인해 아주 멀리 떨어진 천체는 광속을 넘어서는 속도로 멀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이 천체에서 방출되는 빛은 영원히 우리에게 도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천체의 경계선을 ‘우주론적 지평선(cosmological horizon)이라 부른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밤하늘에서 무한한 별을 눈으로 만나는 것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이처럼 올베르스가 이야기한 밤하늘의 역설, 벤틀리가 말한 우주의 미래에 관한 역설은 빅뱅 우주론이라는 현대우주론이 등장하고 나서야 완전한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오랜 기간 과학자들이 고민해 왔던 문제가 현대 천문학까지 이어져 올라왔다니 흥미롭지 않은가. 이 외에도 또 다른 흥미로운 역설이 천문학, 과학 역사에 상당한 의미를 차지하며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다음 편에서 그 이야기를 마저 진행해 보도록 하자.

참고자료

  1. 미치오 가쿠 (박병철 역). 2021. 단 하나의 방정식. 김영사
  2. 미치오 가쿠 (박병철 역). 2006. 평행우주. 김영사
  3. 이광식. 2015. [이광식의 천문학+] 우주는 왜 붕괴되거나 찢어지지 않는가? -벤틀리의 역설. NOW news
  4. 이광식. 2015. [아하! 우주] “밤하늘은 왜 어두운가” -올베르스의 역설, 소설가가 풀었다. NOW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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