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으로 천문학이라는 학문은 다른 과학과 다르게 실험실에서 진행할 수 있는 연구 과정이 거의 없다. 당장 별을 연구실로 가져와서 확인할 방법이 없을뿐더러 우주에 있는 작은 먼지 하나를 연구하기에도 그 대상이 너무나 멀리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혹독한 연구 환경에도 천문학은 끊임없이 결과를 보여줬고 우리는 그 내용을 믿고 배우고 있다. 과연 가보지 않고 만져보지 않고 어떤 자신감으로 우리는 천문학 연구를 이어나가고 있는 것일까. 그 연구 비밀에 대한 답은 1859년 10월 27일. 베를린에서 열린 프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회의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갈릴레이에 의해 천체 망원경이 개발되면서 저 먼 우주에 있는 것들이 조금 더 우리 시야에 가깝게 들어오는 것은 성공했다. 토성의 고리, 목성의 위성, 태양의 흑점 등 다양한 것을 발견했지만 이제 새로운 문제가 눈앞에 다가왔다. 과연 이 천체들은 뭘로 이루어져 있을까? 코페르니쿠스부터 시작되어 갈릴레이를 거쳐 뉴턴이 완성한 과학 혁명은 하늘의 물리학과 지상의 물리학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냈지만 그 구성 성분까지 알아내는 일은 불가능해 보였다.
우리가 망원경을 통해 우주 속 천체에서 받는 것은 오로지 빛 뿐이다. 빛이 얼마나 밝은지, 어떤 색인지 정도의 정보 이외에 다른 무언가를 얻는 방법을 처음 제시한 사람은 아이작 뉴턴이었다. 우리가 만유인력의 법칙의 주인공으로 더 익숙하게 알고 있는 뉴턴은 다양한 업적을 남긴 위대한 과학자였다. 그는 프리즘을 이용해 빛을 분해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단 한 줄기의 빛만 제외하고 모든 빛을 차단한 방을 만든 뉴턴은 프리즘을 통해 그 빛이 여러 색으로 나눠지는 것을 확인했다. 나눠진 빛을 다시 프리즘에 넣어 확인한 결과 이번에는 색이 다시 분리되지 않고 그대로 나온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태양빛에서 여러 색을 확인하고 그 색이 각각 단일 색상이라는 연구 결과는 1704년 ‘광학(Opticks)’이라는 그의 저서에 담겨 있다.
뉴턴의 스펙트럼 실험 이후 1700년대는 새로운 원소의 발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오랜 기간 이어져 온 물, 불, 공기, 흙의 4원소설을 넘어선 학자들은 산소, 수소의 새로운 원소와 함께 ‘화학 혁명’의 구간을 지나고 있었다. 이 격동의 시기였던 1750년대, 스코틀랜드 출신의 학자였던 토마스 멜빌은 다양한 종류의 물질을 연소시키는 실험을 하면서 그 불빛의 스펙트럼을 연구하였다. 그 스펙트럼에는 특정한 노란색 빛깔이 나타나는 것을 확인했다. 이전에도 소금 같은 물질을 태우면 노란 불꽃이 나온다는 것은 알려져 있었으나 스펙트럼에서 그 빛을 확인한 것은 최초였다. 멜빌은 안타깝게도 이 내용을 발표한 다음 해 27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고 만다. 결국 그의 발견은 큰 영향을 주지 못했고 다음 세대에게 공이 넘어가게 되었다.
멜빌이 특정한 색이 나오는 선을 발견했다면 이번에는 색이 비어버린 스펙트럼을 발견한 경우도 있었다. 1802년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화학자였던 윌리엄 울러스턴은 프리즘을 통해 태양의 스펙트럼을 관찰하던 중 몇 가지 검은 선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울러스턴은 이 검은 틈을 색을 구분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결국 20대의 나이에 왕립 학회 자격을 얻은 천재 과학자도 대수롭지 않게 넘긴 이 검은 선의 비밀은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유리 제조업자인 요제프 폰 프라운호퍼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11살의 나이로 고아가 되어 유리 세공 공장에서 일하게 된 프라운호퍼는 얼마 지나지 않아 큰 사고를 당한다. 1801년, 일하던 유리 공장이 무너지는 일로 인해 잔해에 깔리게 된 것이다. 붕괴 사고는 당시에 대대적인 구조 활동이 벌어지게 만들었다. 이를 지휘한 사람은 당시 바이에른 선제후 후계자였던 요제프 왕자였다. 폐허 더미에서 구출된 소년을 불쌍히 여긴 왕자는 그의 재활과 교육을 지원하게 된다. 이 선택은 프라운호퍼를 당대 최고의 유리 제작 기술자가 되는 시발점이 되었다.
수도원에 세운 광학 연구소에서 프라운호퍼는 거대한 날개를 펼쳤다. 20대의 나이에 이미 유럽 최고의 유리 제작 기술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의 목표는 유리의 굴절 성질을 알아내는 것이었다. 성분에 따라 다른 굴절을 보이던 각 유리의 굴절률을 알아내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는 프리즘으로 분해된 각각의 색깔이 장비에 같은 각도로 평행하게 들어오기를 원했다. 그래서 여러 램프를 일정 간격을 두고 설치한 뒤 첫 번째 프리즘에 빛이 들어가도록 설계했다. 각 램프와 프리즘의 각도는 철저하게 계산된 위치에 두어야 했다. 프리즘에 들어간 여러 빛은 같은 개수의 무지개를 만들면서 퍼져나갔다. 220m가 넘는 거리에 위치한 두 번째 프리즘에는 각각의 무지개가 만든 색 중 하나씩을 평행하게 들어오게 만든다. 이 방법으로 프라운호퍼는 램프의 스펙트럼을 측정할 수 있었다. 나트륨 램프였던 관계로 이 작업을 통해 노란색 선을 찾아낼 수 있었다. 멜빌이 찾아냈던 선을 훨씬 정교하게 확인한 것이다.
프라운호퍼의 실험은 끝나지 않았다. 이러한 방식을 응용해 태양빛의 스펙트럼을 확인한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570개가 넘는 정체불명의 검은 선을 확인할 수 있었다. 10여 년 전 울러스턴이 확인한 선의 개수에서 엄청나게 늘어난 숫자였다. 이는 더 이상 빛의 색을 나누는 선이라 볼 수 없었다. 프라운호퍼는 이 검은 선을 렌즈의 성능을 향상시키는 방법으로도 사용했다. 제작된 렌즈가 보여주는 검은 선이 다른 비교 군과 다를 경우 그를 보정하는 방식을 쓴 것이다. 이 방법을 통해 영국이 주름잡고 있던 광학 렌즈 업계의 중심을 바이에른 지역으로 끌어당길 수 있었고 그의 기술은 국가 기밀로 취급받게 되었다.
프라운호퍼의 발견은 공학적으로도 의미가 있었지만 그 속에 숨은 더 큰 비밀은 아직 열리지도 않은 상태였다. 이 내용을 해석하기에는 화학적으로 원소의 개념조차 완벽하게 정립되지 못한 시대였다. 애석하게도 프라운호퍼 본인 역시 39세의 젊은 나이에 중금속 중독으로 인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어린 시절부터 유리 공업에 뛰어들었던 점이 치명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프라운호퍼에 의해 천문학과 물리학과 화학의 거대한 연결점을 여는 열쇠가 눈앞에 떨어졌다. 이제 남은 것은 열쇠 구멍을 찾아 돌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과학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약간의 시간이었다.
1814년 프라운호퍼의 발견 이후 약 40년 정도가 지났다. 스펙트럼의 비밀을 알아내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이 점점 종착지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그 중심에 선 인물은 독일의 과학자였던 구스타프 키르히호프와 로베르트 분젠이었다. 두 사람 모두 각각 다양한 연구 분야에서 이름을 남긴 상태였다. 키르히호프는 대학생이던 시절 전기 회로에 관한 법칙을 고안해냈고 이 법칙은 아직도 전자기학을 배우는 많은 학생에게 키르히호프의 법칙으로 알려져 사용되고 있다. 분젠 역시 분젠 버너라는 특수 실험 도구를 개발했으며 이 도구는 아직까지도 전 세계 여러 연구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처럼 뛰어난 두 학자는 분젠 버너를 이용해 다양한 불꽃을 만들고 그 불꽃을 스펙트럼으로 분석하기 시작했다. 이미 두 사람 이전에도 이러한 스펙트럼 실험은 비슷하게 이어졌었다. 영국의 휘트스톤은 금속의 종류에 따라 스펙트럼에서 특정 선이 나타남을 확인했으며 프랑스의 푸코는 태양빛을 특정 원소 기체를 통과시켜 스펙트럼을 분석했다. 이 분석을 통해 기체가 빛의 특정 부분을 흡수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분명 검은 틈과 빛깔 선에는 무언가 연관성이 있었다.
분젠과 키르히호프는 자체적으로 개발한 분광 장치를 이용하여 실험을 시작했다. 특정 원소를 묻힌 백금 막대를 불꽃에 넣을 때마다 정해진 위치에서 밝은 선이 나타났다. 두 사람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각각의 원소가 만들어낸 빛 선과 프라운호퍼의 검은 틈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몇 가지 원소가 만든 빛이 일부 검은 틈에 딱 들어맞는 것이었다. 앞서 진행됐던 연구에 의하면 기체가 온도가 낮을 경우 스펙트럼의 일부분을 흡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사실대로면 태양에 해당 원소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지구에 가만히 앉아서 내려오는 빛을 보기만 해도 그 안에 어떤 원소가 숨어있는지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었다.
이 발견은 1859년이 되어서야 발표되었다. 이 연구는 사실상 천체물리학의 탄생과 다를 것이 없었다. 우주 속 천체의 물리적 성분을 알아내는 가장 좋은 답안지를 펼치는 것에 성공했다. 이후 키르히호프는 이 연구를 통해 모든 빛을 흡수하고 그대로 방출하는 가상의 물체를 떠올린다. ‘흑체(black body)’라고 불리는 이 가상의 물체는 1900년대 양자역학의 탄생을 알리는 중요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마찬가지로 검은 흡수선이 생기는 원인에 대해서도 양자역학에 의해서 설명되었다. 빛 연구가 더 거대한 과학의 흐름으로 발전한 모습이었다.
프랑스의 철학자 오귀스트 콩트는 철저한 실증주의 철학자였다. 1835년, 그런 그의 생각이 제대로 드러난 발언이 있었다.
과학자들이 지금까지 밝혀진 모든 것을 가지고 풀어보려 해도 절대 알아낼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별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냐는 것이다.
실증주의 철학자 입장에서 가볼 수 없고 가져올 수도 없는 것의 성분을 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다만 안타깝게도 그의 이런 발언은 모두 잘 알다시피 프라운호퍼, 분젠, 키르히호프 등 여러 과학자의 노력을 통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이처럼 과학은 언제나 그랬듯 정해진 한계를 넘어 발전해 왔다. 프라운호퍼가 문을 만들고 키르히호프가 활짝 연 분광학이라는 분야는 단순히 천문학에서 우주의 성분을 분석하는 것에만 쓰이지 않는다. 토양이나 수질이 오염되었는지 그 성분을 분석하는 것에도 사용되며 인체 속에 일어난 문제를 확인하는 것에도 이 분광학이 사용된다. 심지어 운동선수들의 도핑 검사에도 사용되는 기술이 분광 기술이다. 과학은 과학을 낳았고 연구는 또 다른 연구를 낳았다. 결국 그들이 해부해 본 것은 단순한 빛이 아니라 거대한 우주였으며 저 작은 원자였으며 그 모든 ‘과학’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참고 자료
- 케빈 피터 핸드 (조은영 역). 2022. 우주의 바다로 간다면. 해나무
- 존 그리빈 (오수원 역). 2017. 세상을 바꾼 위대한 과학실험 100. 예문아카이브
- 복거일. 2003. 역사를 이끈 위대한 지혜들. 문학과지성사
- 조앤 베이커 (배지은 역). 2016. 일상적이지만 절대적인 양자역학지식 50. 반니
- 이광식. 2015. [이광식의 천문학+]대체 별의 물질을 어떻게 알아냈을까?-답은 별빛에 있다. now news
- 이종필. 2020. [사이언스N사피엔스]분광학, 천문학의 새 장을 열다. 동아사이언스
- 코스모스 다큐 5화 – 빛의 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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