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과학사: 시간이 시작되는 곳

 유럽 대륙에 자리 잡고 있던 문명들이 서서히 자신들의 활동 영역을 지중해에서 더 먼 곳으로 뻗어나가고 있던 시기. 각 나라는 ‘땅’이 아니라 ‘바다’를 점령하는 것을 최대 목표로 삼고 있었다. 모든 면이 바다로 둘러쌓인 나라인 영국은 이 ‘바다’를 탐험하는 것에 나라의 운명을 걸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만들어진 장소 중 하나는 바로 ‘천문대’였다. 1675년 8월 10일. 찰스 2세에 의해 런던 교외 그리니치에 세워진 천문대. ‘왕립 그리니치 천문대’의 초석이 놓였다.

그리니치 천문대의 모습


 바다를 정복하기 위해서는 튼튼한 배, 건강한 선원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안전한 길이 중요했다. 주변 지형지물을 통해 어디쯤 왔는지 가늠이 가능한 지상과 달리 망망대해에서는 현재 자신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알기 어려웠다. 먼 거리를 항해해야 하는 경우 이 문제가 더 심각하게 다가왔다. 눈을 감고 걸어가는 것 마냥 무작정 바다로 향하는 것은 목숨을 내다 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선박들은 자신의 ‘경도’를 알아내야만 했다.

가로선은 위도. 세로선은 경도이다.


 가운데 부분이 살짝 볼록한 공을 잘라본다고 생각하자. 공을 가로로 자르게 되면 어느 면으로 자르게 되어도 단면의 둘레 길이가 다 달라진다. 이 가로선을 지구의 위도라고 부른다. 그 위도 중 가장 긴 중심 부분의 선을 ‘적도’라고 부른다. 하지만 공을 세로로 자르게 될 경우 단면의 둘레 길이 변화는 없다. 지구 입장에서 북극과 남극을 연결하는 거대한 원은 어느 방향으로 그려도 똑같다. 이 선을 ‘경도’라고 부른다.

 이 경도를 이용하면 망망대해에서 현재 위치를 알아낼 수 있다. 원리는 간단하다. 특정 위치의 경도선을 기준으로 잡고 현재 위치와 기준점의 시간 차이만 알아내면 된다. 지구가 자전하는 시간이 대략 24시간이니 1시간에 약 15도의 회전을 한다. 만약 현재 배의 시간과 기준 시간이 1시간 차이가 난다면 배는 경도 15도만큼 항해한 것이다. 이제 이 15도의 경도가 얼마 정도 거리인지만 계산하면 끝이 난다. (적도 부근에서는 경도 1도가 약 111.3km이고 극지방으로 가면 0km로 줄어든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지도. 1400년대에 목판본으로 다시 제작된 지도이다.


 방법은 알고 있다. 다만 이것을 실행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이미 경도와 위도에 대한 개념은 고대 그리스의 프톨레마이오스 시절에도 존재했다. 하지만 측정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지금이야 핸드폰만 있으면 아주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있지만 당시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시계가 거친 바다에서 제대로 작동하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긍정적인 생각이었다. 아무리 많은 항해를 한 베테랑 탐험가여도 경도 측정이 안 되는 상태에서는 매 항해에서 목숨을 걸어야 했다. 콜롬버스, 마젤란 등의 탐험이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대단한 업적인 이유가 이것이었다.

7월 25일의 달 궤도와 별자리. 처녀자리 스피카 옆을 지나고 있다.


 이 경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사람들에는 뱃사람만 있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천문학자들이 이 문제에 뛰어들었다. 하늘에 있는 천체를 이용하여 경도를 알아내겠다는 것이다.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베르너는 달의 이동경로에 위치한 별의 배치를 알아내면 된다고 생각했다. 기준 장소에서 달과 별이 만나는 시간을 미리 예측해놓고 바다 위 장소에서 관측을 통해 얻은 시간과 차이를 계산하면 경도를 알 수 있었다. 문제는 이를 위해서는 기준 장소의 예측표가 필요했고 해당 시간에 날씨가 맑아야만 했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정확한 관측도 어려웠고 몇 년 동안 달과 별의 접근 시간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 자체도 당시 기술로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목성의 위성을 이용한 경도 측정으로 프랑스의 해안선 지도가 다시 그려졌다. 진하게 그려진 선이 다시 그려진 해안선. 루이 14세는 적국보다 천문학자들이 자국 영토를 더 빼앗아갔다고 불평할 정도였다.


 이 어려운 미션에 도전한 또 다른 학자는 바로 갈릴레오 갈릴레이였다. 그는 자신이 관측한 목성의 위성을 이용하려 했다. 목성에 의해 위성이 가려지는 엄폐 현상의 주기를 미리 계산해놓고 망원경으로 관측했을 때 그 시간 차이를 이용하는 방식이었다. 갈릴레이의 기대와 달리 이 방식 역시 바다에서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역시나 정확한 관측이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방식은 땅에서 지도 제작에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갈릴레이 이후 이 방식을 계속 연구했던 학자 중 대표적인 인물로 프랑스의 천문학자 조반니 카시니가 있었다. (카시니와 이 연구를 같이 진행하던 덴마크의 천문학자 올레 뢰머는 목성 위성 엄폐를 관측하다가 빛의 속도를 최초로 측정하는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존 플램스티드의 초상화. 평생을 투자하여 별의 목록을 만들어냈다.


 이처럼 프랑스가 목성 위성을 이용한 방법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때 영국에서는 달과 별을 이용한 베르너의 방식을 보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 결과 젊은 영국인 천문학자 존 플램스티드를 초대 왕실 천문관으로 임명하며 정밀한 천문지도를 작성하기 위한 기관 그리니치 천문대가 완성된 것이었다.

1707년. 귀환하던 영국 함대는 경도 계산 실패로 위치를 잘못 확인하여 실리 제도에서 4척의 배가 침몰하였다. 이 사고로 함대 사령관조차도 사망하고 만다. 이 참사를 묘사한 그림.


 그리니치가 완성되고 플램스티드가 자신의 인생을 갈아 넣어 가면서 별 목록을 작성하고 있던 1714년. 계속된 해상사고(1707년 무려 1600명이 넘는 영국 해군이 경도 계산 실패로 침몰하여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었다.)와 큰 진전이 없는 경도 확인법에 한계를 느낀 영국은 경도법을 발표하게 되었다. 경도를 측정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사람에게 거액의 포상금을 내건 것이었다. 여기에 걸린 상금은 당시 2만 파운드로 지금으로 치면 50억 원이 넘는 금액이었다. 심사위원으로는 해군 측 장성과 왕실 과학자 등 다양한 이해 관계자가 포진되었다. (법이 발표된 당시 심사위원 중 왕립 학술원장 자격으로 있던 사람이 바로 아이작 뉴턴이었으며 얼마 뒤 또 심사위원의 자격을 받은 과학자는 애드먼드 핼리였다.)

존 해리슨의 초상화. 손에 들고 있는 것은 그가 개발한 시계 H-4이다.


 거액의 상금에 이끌려 수많은 제안서가 날아왔다. 하지만 하나같이 기준에 오르지 못한 제안이었다. 경도법에 걸린 상금이 잠자고 있던 1730년. 플램스티드에 이어 2대 왕실 천문관에 오른 애드먼드 핼리에게 한 명의 손님이 찾아왔다. 바다에서 사용이 가능한 시계를 만들 수 있다고 찾아 온 인물은 존 해리슨이라고 하는 시계공이었다. 핼리와 해리슨의 만남 이후 5년이 흘러 설계도만 있던 시계가 실물로 완성되었다. 해리슨의 첫 번째 시계. H-1의 탄생이었다.

 시계를 이용한 경도 측정 방법은 이러했다. 영국 그리니치에서 해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 정오 시간을 12시에 맞춘다. 배를 항해하면서 해당 위치의 정오 시간을 읽은 후에 그리니치와 시간 차이를 계산하면 되었다. 만약 그리니치가 정오일 때 바다에서 시계가 오후 1시라면 서쪽으로 15도 이동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그 시대 이전 시계는 모두 무게추와 진자를 이용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오차가 많았고, 더욱이 항해용 시계는 바다의 높은 습도와 여러 위도를 오가면서 발생하는 온도 변화에 대한 보정장치가 있어야 했기 때문에 뉴턴 역시 경도법 발효 당시 이런 시계는 현 기술로 만들 수 없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해리슨의 H-1 시계 모습


 이런 시계에 대한 인식과 달리 해리슨의 장치 성능은 상상을 초월했다. 하루 종일 오차가 약 3초 안쪽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다른 시계들이 하루에 분 단위로 오차를 보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발전이었다. 거기에 배에 태워 진행한 테스트에서도 합격점을 받았다. 경도상의 주인공은 해리슨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정작 해리슨 본인은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시계는 더욱 작아졌고 정확도가 더 발전했다. 그렇게 4번째 시계인 H-4는 약간 큰 회중시계 정도로 완성되었다.

H-4의 겉모습과 내부 모습. 현재도 H-1부터 H-3까지는 작동을 하고 있으나 H-4는 멈춰있다. 워낙 정밀한 부품이 담겨 있기 때문에 사용하면 할수록 수명이 줄기 때문이었다.


 1759년 완성된 H-4는 그야말로 걸작이었다. 마찰을 줄이는 방법, 온도 차에 의한 변형을 줄이는 방법, 진동에도 견디는 방법 등 해리슨이 평생을 바쳐 연구한 공학적 내용이 총집합된 예술작품이었다. 결국 최종적으로 이 H-4에는 경도국의 상금이 주어졌다. 다만 당시 그리니치 천문대가 아무 진전이 없는 상태는 아니었다. 1759년 당시 3대 왕실 천문관이던 제임스 브래들리부터 5대 천문관이었던 네빌 매스켈린까지 달과 별을 이용한 예측을 더욱 정교하게 진행하는 것에 성공했었다. 다만 그 사용법의 난이도에서 압도적으로 해상시계가 더 쉬웠기 때문에 점차적으로 해리슨의 업적이 더 멀리 퍼지게 되었다.

네빌 메스켈린의 초상화. 천체 예측의 정확도를 올린 업적이 있으나 그는 해리슨의 시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 문제 때문에 해리슨은 H-4 완성 후 몇 년이나 상금을 받지 못했다.


 해리슨의 시계. 후에 크로노미터라 불리는 장비가 대중화되면서 정밀한 항해가 가능해졌다. 영국의 배는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니기 시작했고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건설이 시작되고 있었다. 비록 경도를 측정하기 위한 방식은 해리슨의 시계가 승리했지만 그리니치는 다른 방식으로 경도와 연관성을 이어 나갔다. 1851년 영국과 관련된 배들은 그리니치를 경도 기준선으로 지정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마찬가지로 각국 역시 자신들만의 경도 기준선을 세우기 시작했다.

조지 스티븐슨이 개발한 최초의 증기기관차. 영국에서 시작된 철도 붐은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그 결과 영국 뿐 아니라 프랑스 파리, 독일 베를린, 미국 워싱턴 등 주요 도시를 기점으로 한 기준 경도선. 본초 자오선이 설정되었다. 각국이 서로 다른 기준선을 세운다고 해서 당장 큰 문제가 있을 것은 없었다. 다만 기술의 발전이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눈앞으로 가져왔다. 1925년 최초로 증기기관차가 상용화되면서 세계가 조금씩 연결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나라 간 교류가 늘어나면서 서로 다른 경도 기준선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매우 불편한 상황이었다.

파리 천문대의 모습. 현재 국제시간국 본부가 있으며 전세계천문대 표준 시간은 이곳에서 결정된다.


 문제점은 인식했으나 이것을 합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본초 자오선을 자신들의 땅으로 가져온다는 것은 나라의 자존심이 달린 일이었다. 태양 및 여러 천체를 관측하면서 시간을 정밀하게 측정해야 하는 천문대 특성상 자오선의 기준점이 된다는 것은 논리적인 설명이었다. 이 부분에서 경쟁을 펼치게 된 것은 왕립 그리니치 천문대와 파리 천문대였다. (물론 인류 역사적 유물인 피라미드를 기준선으로 하자는 등 온갖 주장이 다 나오기는 했었다.) 그리고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어필하며 해결하려 한 곳은 영국도 프랑스도 아닌 캐나다와 미국이었다.

샌포드 플레밍의 사진. 적극적으로 표준시 체계를 알린 인물로 추후 기사 작위를 받게 된다.


 상대적으로 땅덩어리의 크기가 작아 자국 내에서 경도 문제를 크게 인식하지 못한 영국과 달리 미국과 캐나다는 사정이 달랐다. 워낙 거대한 땅덩어리인 덕분에 나라 안에서 시간이 제각각인 사태가 발생했다. 단순이 지역별로 자신들에 맞는 시간을 쓰는 것을 넘어 철도가 깔리면서 열차 시간 표기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캐나다의 엔지니어였던 샌포드 플레밍은 본초 자오선을 설정하고 지구를 여러 자오선으로 나누는 안을 제안했다. 그의 노력에 힘입어 1884년 10월. 미국 워싱턴에서 국제 자오선 회의가 열리게 된다. 그리고 이 회의에서 프랑스의 격렬한 반대가 있었지만 19개국 대표단 대부분의 선택은 그리니치 천문대였다. 대영제국의 영향으로 이미 그리니치 기준선을 사용하는 항해사가 훨씬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리니치 천문대에 있는 자오선. 서울 표시가 보인다. (별내 어린이천문대 송쌤 제공)


 우리가 ‘천문대’라는 말을 떠올리면 별을 연구하기 위한 공간으로 떠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와 달리 실제 과거 천문대의 설립 이유는 그리니치 천문대처럼 인류의 편의성을 위한 연구였던 경우가 많았다. 1600년대 설립부터 1800년대 본초 자오선 지정까지 200여 년의 시간동안 유럽 최고 수준의 관측 업적을 남긴 그리니치는 현재 연구용이라기보다 관람용 및 대중 천문용도로 쓰이고 있다. 그곳에 기록된 본초 자오선 표시에는 전 세계 대표 도시들의 이름이 새겨져 관광객들의 방문을 받고 있다. 시간이 시작되는 곳. 이곳이 이런 거대한 업적을 쌓은 이유가 단순히 ‘인류’를 위한 ‘과학’을 했기 때문은 아닐까.

참고자료

  1. 데이바 소벨(김진준 역). 2012. 경도 이야기. 웅진지식하우스
  2. 피터 갤리슨(김재영, 이희은 역). 2017. 아인슈타인의 시계, 푸앵카레의 지도. 동아시아
  3. 쳇 레이모(변용란 역). 2008. 자오선 여행. 사이언스북스
  4. 클라크 블레즈(이선주 역). 2010. 모던 타임. 민음사
  5. 김민재. 2020. 시간의 개념’을 느낄 수 있는 최적의 장소. Science Times
  6. 권홍우. 2017. 세상을 바꾼 시계공의 30년 집념. 서울경제
  7. 권영일. 2015. 세계 표준시의 기원은 미국 철도. Science Times
  8. 구본권. 2019. 경도법과 노벨상. 한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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