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과학사: 땅 속 깊은 곳의 천문학


 2001년 6월 18일. 캐나다에 위치한 서드베리 관측소에 있는 미국, 캐나다, 영국의 다국적 연구팀은 태양 중성미자 문제를 해결했다는 발표를 진행했다. 그리고 이 발견은 14년이 지나 2015년, 연구 책임자였던 아서 맥도날드와 같은 연구를 따로 진행하던 일본의 가지타 다카아키의 노벨상 수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과연 이 ‘태양 중성미자 문제’가 무엇이길래 이 연구가 노벨상을 얻게 된 것일까. 이 이유를 알려면 1930년대 물리학의 격변기로 잠시 돌아가 볼 필요가 있다.

서드베리 중성미자 관측소의 모습


 물리학에서 ‘에너지 보존 법칙’이란 절대로 놓칠 수 없는 성서라 볼 수 있다. 그런데 1911년 이상한 실험 결과가 발표된다. 원자핵에서 전자가 빠져나오며 붕괴하는 베타붕괴 과정에서 에너지 보존 법칙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튀어나온 전자의 운동에너지가 제멋대로 였던 것이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해결책을 제시한 사람은 양자역학의 선구자였던 볼프강 파울리였다. 그는 베타붕괴가 일어날 때 검출기에 검출되지 않는 입자가 에너지를 가지고 방출된다고 생각하면 에너지 보존법칙을 지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파울리는 이 ‘검출되지 않는 입자’를 언급하면서 골치 아픈 일을 저질렀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론의 출발점이 발견할 수 없는 입자인데 이것을 찾는다는 것은 모순되었기 때문이다.

볼프강 파울리의 모습


 이 작은 입자는 “중성미자”라고 불리며, 여러 과학자들의 도전을 받았다. 물질과 반응을 해야 그 흔적이라도 찾을 텐데 이론상 거의 반응을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 입자를 찾기 위해 실질적인 실험을 시작한 사람은 1950년대 미국 브룩헤이븐 연구소에 있던 화학자 겸 물리학자 레이먼드 데이비스였다. 데이비스가 중성미자에 관심을 가질 때 이미 이 입자를 검출할 방법론에 관한 내용이 하나 세상에 나와 있었다. 무수히 많은 중성미자가 있다면 확률 상 염소 입자에 충돌할 가능성이 올라가고 사고를 당한 염소 입자는 아르곤이라는 아주 안정적인 기체로 일정 기간 동안 변한다는 내용이었다. 데이비스에 필요한 것은 무수히 많은 중성미자가 나올 장치와 염소로 가득 찬 장치뿐이었다. 그리고 연구소에는 엄청나게 많은 중성미자가 내뿜어지는 장치가 이미 존재했다. 바로 소형 원자로였다.

레이먼드 데이비스의 모습. 40대가 되기 전에 시작한 중성미자 실험에 평생을 바치게 될 줄 그는 알았을까.


 원자로에서는 우라늄 핵분열을 통해 무수히 많은 중성미자가 방출된다. 현재 원자력 발전소에서 보통 방출되는 중성미자의 개수가 대략 1조의 10억 배 정도 된다고 하니 당시 출력이 부족한 원자로라 하더라도 방출되는 양은 적지 않았다. 이 정도의 숫자라면 분명 염소와 반응하는 입자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했다. 데이비스의 실험은 간단했다. 원자로 옆에 설치한 통에 무려 3800리터의 세제를 집어넣었다. 원자로 스위치를 켜고 끌 때마다 검출되는 아르곤 입자에 차이만 있으면 끝이 나는 일이었다. 그러나 실험은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원자로와 상관없이 아르곤이 예측보다 아주 소량 꾸준하게 나타난 것이었다.

 데이비스는 자신의 실험 설계에 문제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강한 출력을 가진 원자로(더 많은 중성미자)를 찾아다녔고 더 커다란 염소 탱크(더 많은 반응물질)를 만들어 반응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특별히 다르지 않았다. 이렇게 데이비스의 실험이 지지부진하고 있을 때 하필 같은 곳에서 실험을 하고 있던 다른 연구팀이 1956년 6월 14일. 중성미자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발표한다. 데이비스의 실험이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이유는 원자로에서 나오는 중성미자가 정확히 따지면 ‘중성미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핵분열에서 나타나는 입자는 중성미자의 반입자인 반중성미자였으나 당시에는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중성미자를 찾는데 성공한 연구팀은 염소가 아닌 물을 이용하여 반응시켰는데 이때는 반중성미자이건 중성미자이건 모두 확인이 가능했다. 중성미자의 첫 발견은 놓쳤다. 하지만 이상한 점은 남았다. 원자로에서 날아온 반중성미자는 검출이 불가능했을 텐데 데이비스의 세제 통 안에서 발견된 아르곤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중성미자를 최초로 발견한 연구팀의 프레데릭 라이네스. 그와 동료 클라이드 코완이 고안한 중성미자 검출기의 모습. 이 두 사람은 중성미자 검출을 위해 핵폭탄을 터트릴 계획도 짰었다.


 범인은 하늘에 있었다. 지구의 주인이자 태양계의 지배자. 태양이었다. 태양은 원자로와 반대로 핵융합 반응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중성미자를 뿜어내게 되는데 그 양이 1초당 1제곱미터에 700조 개가 쏟아지는 정도이다. 이 어마어마한 중성미자의 폭풍 속에서 염소와 반응할 정도로 강한 에너지를 가진 친구들이 있었던 것이다. 데이비스의 목표는 중성미자의 발견에서 태양에서 날아오는 중성미자 검출로 약간 변경되었다.

 이론 물리학자였던 동료 존 바칼과의 협력을 통해 태양 중성미자가 어느 정도 확률로 검출될지 확인한 데이비스는 지금까지의 실험 장치로는 가망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태양에서 날아오는 강한 중성미자의 개수가 적은 것도 문제지만 태양 말고 우주 사방에서 날아오는 우주선 역시 검출기에 잡음을 남길 것이라는 점이 더 큰 문제였다. 이 문제를 최소화시키는 방법은 간단하지만 어려웠다. 땅 속 깊은 곳으로 파고 내려가야 했다. 불굴의 데이비스는 1.5km를 파고 내려간 금광을 빌려 40만 리터짜리 대형물탱크까지 만들어냈다. 작은 원자로 옆에 좀 커다란 세제통으로 시작한 연구가 땅 속 깊은 곳 대형 수영장 크기의 물탱크로 진화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태양 중성미자의 검출로 나타났다. 거기서 끝났으면 좋았겠지만 꼬리를 물고 더 이상한 문제가 다가왔다. 바칼이 계산한 이론값과 데이비스가 검출한 중성미자의 값이 무려 3배 가까이 차이가 난 것이다.

홈스테이크 광산에 자리잡은 데이비스의 실험장소


 이론과 실험이 차이를 보인다면 일반적 상식으로는 둘 중 하나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전 세계 여러 연구팀이 데이비스의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태양 중성미자를 검출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이탈리아에서 진행된 실험, 소련에서 진행된 실험 등 여러 실험의 결과는 똑같이 이론값에 비해 적은 관측값이었다. 그렇다면 문제는 바칼이 만든 태양 표준 모형에 있는 것일까. 이 태양 중성미자 문제는 미궁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그랑사소 연구소의 모습. 이곳에서 갈륨을 이용한 태양 중성미자 측정 실험이 진행되었다.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바칼의 태양 표준모형 뿐 아니라 핵융합 이론에 문제가 있다거나 중력상수에도 뭔가 실제와 다른 점이 있던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 학자도 있었다. 이렇게 온갖 이야기가 나오던 때 태양 중성미자의 비밀을 풀 열쇠는 이미 한참 전에 나와 있었다. 중성미자 진동 이론이었다. 입자물리학의 세계는 중성미자만 붙잡고 있기엔 너무 많은 문제와 발견이 난무하고 있었다. 그 결과 표준 모형이라 불리는 자연계 기본 입자의 빈칸이 하나씩 채워지고 있었다. 이 상황 속에서 중성미자의 종류가 무려 3가지라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고(전자 중성미자, 뮤온 중성미자, 타우 중성미자) 이 세 종류의 중성미자가 서로 변신할 수 있다는 이론이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데이비스와 여러 과학자의 태양 중성미자 실험은 태양에서 나온 중성미자의 변신을 고려하지 못해 생긴 오류인지 확인해야 했다.

표준모형의 모습. 제일 아랫줄 초록색 칸에 중성미자 3개 종류가 보인다. (왼쪽부터 전자 중성미자, 뮤온 중성미자, 타우 중성미자 순)


 이 내용을 확인하려면 더 정밀하고 거대한 실험 장치가 필요했다. 첫 번째 실험팀은 일본의 카미오칸데 연구팀이었다. 이미 카미오카 광산에 3000톤의 물을 넣고 중성미자 검출에 성공한 경험이 있는 연구팀은 더 거대한 장비를 만들기 시작했다. 5만 톤의 물을 담을 수 있는 40m짜리 원통을 1000m 지하에 설치하는데 1000억 원에 가까운 돈이 들어갔다. 슈퍼 카미오칸데라 불리는 이 실험 장치는 결국 중성미자의 진동을 확인하는데 성공했다. 다만 이 실험은 태양에서 날아온 중성미자가 아니라 지구 대기에서 생겨난 중성미자를 확인한 결과였다. 태양 중성미자 역시 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은 분명하지만 확실한 결과가 필요했다.

슈퍼 카미오칸데의 모습. 물탱크의 벽면에 가득 광증배관 센서가 달려있다.


 1990년대를 카미오칸데 연구팀이 활발한 연구 결과로 장식했다면 2000년대는 캐나다의 서드베리 연구소가 그 바통을 이었다. 고작(?) 12m짜리 원통형 공에 불과한 크기의 실험 장치지만 지하 2km가 넘는 곳에 위치한 서드베리중성미자관측소(SNO)는 그냥 물이 아닌 새로운 물질로 실험을 시작했다. 원자로에 주로 쓰는 것(원자로 냉각재, 감속재로 주로 사용된다.)으로 알려진 ‘중수’가 그 주인공이었다. 수소 대신 중수소가 포함된 물인 중수는 일반적인 물에서 극히 일부만 존재한다. 이 귀한 물인 중수를 이용하면 이론상 세 종류의 중성미자를 모두 확인하는 것이 가능했다. 700억 원이 넘는 돈이 투입된 SNO는 1999년이 되어서야 완공이 되었다. 그리고 실험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세 종류 중성미자의 합은 바칼의 이론값에 가까워졌다.

중수로 만든 얼음은 일반 물 속에 넣었을 때 가라앉는다.


 수십 년을 이어져 온 중성미자 검출의 역사는 1995년 최초 검출자 프레데릭 라이네스의 노벨상, 2002년 집념의 과학자였던 레이먼드 데이비스와 카미오칸데 프로젝트의 출발점이었던 일본의 고시바 마사토시의 노벨상, 2015년 SNO의 책임자 아서 맥도날드, 슈퍼 카미오칸데의 책임자였던 가지타 다키아키(고시바 마사토시의 제자)의 노벨상 수상으로 결실을 맺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아예 끝을 맺은 것은 절대 아니다. 당장 일본은 26만 톤의 물이 들어가는 하이퍼 카미오칸데 프로젝트를 시작했으며 현재 남극의 빙하 저 깊은 곳에 아이스큐브라 불리는 중성미자 검출기가 설치되어 작동 중에 있다. 심지어 우리나라 역시 강원도 정선군 예미산 지하 1000m에 실험실을 만들어 중성미자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예미산 내부에 위치한 예미랩의 모습


 과학을 함에 있어서 실험과 이론은 두 개의 커다란 기둥이다. 둘 중 하나라도 없다면 다리가 빠진 책상처럼 아주 불완전한 모습일 뿐이다. 태양 중성미자 문제는 실험과 이론 두 가지 다리가 모두 제 자리에 똑바로 서면서 해결이 되었다. 그 과정에는 어떤 과학자들의 평생을 바친 끈기와 집념과 노력이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과학에는 아주 많은 미제 사건들로 가득 차 있다. 실험이 이론에 의문을 제기하고 이론은 실험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또 어떤 노력이 이 두 다리를 똑바로 세워 새로운 지식의 문을 열 수 있게 할지 기대가 되는 부분이다.

참고자료

  1. 박인규. 2022. 사라진 중성미자를 찾아서. 계단
  2. 이강영. 2015. 그가 살았다면 일본은 10년 더 빨리 노벨상 챙겼다. 프레시안
  3. 권민성. 2015. 2015 노벨상, 그 주인공을 살펴보다. 카이스트 신문
  4. 권성준. 2020. 태양에서 발견한 중성미자의 미스터리 2002 노벨 물리학상: 우주 중성미자. 문화뉴스
  5. 오철우. 2015. ‘유령입자’ 뉴트리노, 그 변신의 신호를 포착하다. 사이언스 온
  6. 임상훈. 2020. 사람도 통과하는 ‘유령입자’ 중성미자. 동아사이언스
  7. 이인호. 2022. 정선 예미산 지하 1천m에 대규모 물리실험실. 아틀라스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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