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0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과학문화 상설전시실을 해설하는 영상을 새로 공개했다. 사실 이 과학문화 전시실이 새 단장을 한 것은 작년 12월 말이었지만 전문 큐레이터의 소개와 함께 볼 수 있는 영상이니 이제라도 만들어 준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혼천의, 천구의에 마지막 천상열차분야지도까지. 조선시대의 천문 분야를 망라하는 이 전시 공간에 사실 관측적인 과학 요소가 전혀 없는 유물 종류가 하나 들어가 있다. 100cm가 넘는 긴 길이를 가진 검. 칼날에 별자리가 가득 새겨진 이 검은 우리나라 문화 속에서 별자리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려주는 좋은 유물이 되어준다. 이처럼 천체 관측 용도가 아니더라도 별자리와 별은 우리 조상들의 생활 속, 인식 속에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일상에 숨어든 별의 모습을 유물 속에서 만나보도록 하자.
나쁜 기운을 몰아내는 검 – 사인검 (조선)
‘인’(호랑이)이 가진 힘으로 재앙을 몰아내는 검. 이름부터 그 모습까지 위엄이 넘치는 ‘사인검’은 조선 태조 때부터 제작된 의례용 칼이다. 12간지 중 호랑이에 해당하는 ‘인’이 들어간 시간에 제작하였다 하여 사인검이라 불렸는데 ‘인년’, ‘인월’, ‘인일’. ‘인시’에 맞추면 사인검, 하나가 빠지면 삼인검이라 칭했다. 12년에 한 번만 만들 수 있는데다 준비 기간만 3개월 이상 걸리는 까다로운 칼이다 보니 애초에 많이 만들 수도 없는 물품이었다. (사인검을 200자루 만들라고 지시했던 연산군은 어떤 의미로 대단한 임금이었다.)
도교적인 요소가 들어간 검이어서 칼날에 한자 주문, 산스크리트어가 그려져 있으며 북두칠성과 28수 별자리를 새겨넣었다. 호랑이의 양기를 가득 담아 재앙을 막는 검이라는 의미가 담겨 왕실에서 신하에게 하사하는 형식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유교의 나라인 조선에서 도교적 색채가 짙은 이 사인검이 큰 의미를 품고 있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부분이다. 실제로 인조 시기 영의정까지 지낸 신흠은 사인검을 받고 너무 기쁜 나머지 “사인도가”라는 시까지 지어 남겨놓았다. (심지어 그 검은 왕에게 하사받은 것도 아니고 아들이 구해다 준 것이었다고 한다.)
이 사인검은 대중매체에서도 아주 강력한 무기로 자주 등장한다. 동명의 영화로도 유명한 웹툰 ‘신과함께’에서 저승차사들이 사용하는 강력한 무기로 등장하며 게임 ‘디아블로’에서도 인검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퓨전 사극 드라마에서도 적을 물리치는 주요 공격 무기로 등장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정작 실제 사인검은 날을 세우지 않아 살상력이 없다는 점이랄까. 인간은 죽일 수 없지만 사악한 것을 몰아내는 검이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앞으로도 여러 매체에서 활약할 일만 남은 유물이라 볼 수 있겠다.
하늘을 담은 거울 – 별자리무늬 거울 (고려)
청동거울은 단군신화 속 천부인 중 하나에 들어갈 정도로 중요한 유물이었다. 거울로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 자체에 신비함이 있다고 느낀 고대 사람들은 이 청동거울을 권력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그 결과가 고조선-삼국시대에 걸쳐 고작 100여 점의 청동거울만 전해진다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시기가 고려로 넘어오면서 청동거울의 의미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거울이 대중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발견되는 유물 개수 또한 이전 시기에 비해 20배 가까이 되고 장식의 형태도 다양해졌다. 이제야 거울이 진정한 생활용품이 된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이 유물(그림6)은 중심 손잡이를 기준으로 좌측에 소, 우측에 구름에 올라탄 토끼의 형상을 그려넣었다. 그 위에 선으로 연결된 작은 점들이 보이는데 이것이 별자리이다. 모양으로 봐서는 약간 어색하지만 북두칠성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발굴된 곳이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 근처로 박물관 측에서는 생활용품보다는 도교의 제례의식에 사용된 물품으로 추측하고 있다. 고려 시기에는 이러한 의식을 국가 차원에서 진행하였다고 하니 상당히 특별한 거울이 아니었나 싶다.
당신과 다음 생에도 함께 – 시상 조각 (통일 신라)
죽음과 별을 연결하는 것은 인류가 문명과 문화를 이룩한 이래로 계속되어 온 전통 중 하나이다. 고인돌에서도 별자리의 흔적이 발견되고 있고 고분 벽화 속에서도 별자리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만날 수 있는데 이집트의 석관 속에 별의 형상이 장식되어있는 경우도 만날 수 있다. 이러한 경우들 대부분이 망자의 사후 세계를 위한 안배로 알려져 있다.
해당 유물(그림8)은 어떠한 물건을 담았을 함(사리함으로 추정하기도 한다.)의 뚜껑 부분에 만들어진 조각이다. 부부의 모습으로 추정되는 두 사람의 주위에 해와 달, 그리고 별자리가 그려져 있다. 모양으로 추측하기로는 북두칠성과 남두육성으로 보인다. 모습 자체는 통일신라 시대에 사용된 무덤 양식인 돌방무덤 속 ‘시상’이라는 받침대처럼 보인다. 이 시대 무덤은 받침대 위에 돌베개와 다리받침까지 준비되어 있었으며 나무 관 없이 그대로 받침대에 시신을 안치하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그 방식을 떠올려보면 조각 속 두 사람은 이미 죽은 것으로 생각된다. 죽어서도 함께 다음 생으로 향하는 모습을 조각한 것이라 추측하면 상당히 낭만적인 모습으로 보인다.
또한 두 사람 주변에 장식된 북두칠성과 남두육성은 고분 속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별자리이다. 동양 별자리에서 어쩌면 가장 유명한 북두칠성은 죽음을 담당하는 별자리이다. 그와 반대로 남두육성은 탄생을 담당하고 있으니 무덤에 가장 잘 맞는 별자리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동양권 다른 나라들과 다르게 남두육성의 중요성이 상당히 큰 편이다. 남두육성은 밤하늘에서 북두칠성처럼 오래 밝게 보이지도 않고 여름철에만 잠시 모습을 드러내는 편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 벽화에서도 가야 벽화에서도 북두칠성과 쌍벽을 이루는 형태로 나타내진다. 그만큼 생명을 더 소중히 여긴 것일까. 아니면 북쪽과 남쪽의 방위를 표현하는 지표로 남두육성을 사용했을 뿐일까.
우리나라에 별자리와 관련된 유물 중 유명한 것은 역시나 처음 언급했던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와 혼천의 정도일 것이다. 다만 이 유물은 별의 위치를 읽고 해석하던 과거 천문학자들의 도구이자 권력을 나타내는 지표이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 하늘을 보는 것과 관계없는 삶을 살던 사람들에게도 별자리와 관련된 물건은 이렇게 많이 존재했다.
역사적으로 별과 별자리는 천문학과 관련 없어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며 생활 속에 녹아들어 왔다. 별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고 세상을 읽어보려 한 조상의 염원이 이 유물들 속에 잘 담겨있다. 날씨가 따뜻해진 봄날, 긴 세월이 켜켜이 쌓여 더 깊은 별빛을 품게 된 이 유물들을 만나러 박물관 나들이를 나서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것 같다.
참고자료
- 국립중앙박물관
- 국립고궁박물관
- 국립경주박물관
- 이기환. (2019). 고구려 고분과 아라가야 왕릉의 남두육성.. 그 깊은 뜻은?. 경향신문
- 이석재. (2016). 순양의 기운을 벼려 삿됨을 베다. 사인검(四寅劍). 문화재청
- 안상현. (2022). 우리 별자리 이야기. 좋은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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