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표시판에 목적지까지의 거리가 표시된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네비게이션이 없던 과거에는 그 표지판을 봐야만 내가 어디쯤 왔고 얼마쯤 더 가야 하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이처럼 거리와 길이를 안다는 것은 크게는 도로 위에서, 작게는 집 인테리어를 할 때 등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 일상생활에 중요하게 스며들어 있다. 이 모든 거리는 우리가 줄자, GPS 등 길이를 측정하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사용이 가능한 물리량이 된다. 문제는 이러한 거리 측정 방법이 지구를 넘어 우주 범위까지 가게 되면 그 난이도가 상상을 초월하게 상승한다는 점이다. 도대체 뭘 보고, 무슨 기준으로 우리는 천체의 거리를 알고 우주의 범위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일까.
우주에 있는 물체까지 거리를 측정하려는 노력은 고대 그리스 학자들의 기록에도 자주 등장한다. 사모스 섬 출신의 학자인 아리스타르코스는 최초로 지동설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지동설을 주장한 이유 중 중요한 요인은 태양의 크기였다. 월식이 일어날 때 달에 보이는 지구 그림자를 이용해 달과 지구의 크기 비율을 알아낸 그는 여기에 태양까지 집어넣어 생각하기 시작했다. 달이 반달 형태로 보이는 순간 지구와 태양과 달이 직각 삼각형을 만든다는 점을 생각해 세 천체 사이 거리의 길이 비율을 구했고 태양과 지구, 달의 크기 비까지 계산해냈다. 물론 실제와 차이가 많이 나는 결과였지만 지구보다 훨씬 거대한 태양이 지구 주변을 돈다는 건 모순이라고 결론 내린 것이었다. 아리스타르코스 이후 막대기 하나로 지구의 크기를 측정한 에라토스테네스 (이 계산 결과를 아리스타르코스의 비율에 넣어 달, 태양까지의 거리를 알아냈다.), 시차를 이용해 달까지 거리를 측정한 히파르코스 등 여러 학자가 거리 계산에 뛰어들게 된다.
이런 거리 측정의 가능 범위는 생각보다 오랜 기간 정체되어 있었다. 태양계 내에 있는 천체를 넘어가면 너무나 멀리 있어 도저히 시차를 이용해 알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관측 기기와 기술의 발달로 가까운 별까지의 거리는 어느 정도 확인이 가능해졌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별이 한 자리에 박혀 있는 것처럼 멈춰서서 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을 써야 저 배경까지 거리를 알아낼 수 있을까. 그 열쇠는 ‘거리 측정’ 연구가 아닌 전혀 다른 곳에 숨어있었다.
1800년대 후반, 천문학계는 새로운 유형의 연구 방식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천체 사진 촬영이라는 방식의 선구자였던 미국의 천문학자 헨리 드레이퍼는 스펙트럼 선 연구에 자신의 모든 역량을 투입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천체의 스펙트럼을 분석하면 해당 천체에 어떤 원소가 있었는지 알아낼 수 있다.) 그러던 와중 늑막염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하게 되고 그의 유지는 아내였던 드레이퍼 여사가 이어가기 시작했다. 부유했던 재산을 하버드 천문대에 투자하면서 그 연구를 지속하게 한 것이다. 당시 하버드 천문대장이었던 에드워드 피커링은 이 연구를 통해 수많은 별의 스펙트럼을 유형에 따라 분류하는 작업을 목표로 삼았다. 그 결과는 신기하게도 여성들이 천문학 연구에 참여하는 방향으로 나타났다.
드레이퍼 부인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지만 피커링은 끊임없이 자금 부족에 시달려야 했다. 값비싼 망원경으로 더 좋은 데이터를 얻으면 얻을수록 그 내용을 분석할 사람이 더 많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이 해결책으로 여성 자원봉사자를 모집했다. 하버드에는 여학생이 없었지만 (하버드에 여학생이 생긴 것은 1977년 레드클리프 여대와 합병을 한 이후부터였다.) 다른 대학을 졸업한 여학생이 천문학에 참여할 기회가 거의 없었고 이것을 해결함과 동시에 자신의 인력 부족 현상을 같이 마무리하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이 자원봉사는 시간이 흘러 임금을 받는 형태로 변해갔다. 이 계산원의 역할에 뛰어든 여성 중 상당수가 이후 상당한 업적을 남긴 것을 보면 역사를 바꾼 선택이 된 순간이었다.
이 자원봉사에 지원했던 사람 중 한 명이었던 헨리에타 스완 리비트는 25살의 레드클리프 졸업생이었다. 그녀가 처음 받은 임무는 별의 밝기를 측정하는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당연하게도 밝기가 변하는 별이 걸리게 되었다. 당시에도 이렇게 밝기가 변하는 변광성은 종종 발견되던 천체였다. 그 와중에 변광성의 발견을 빠르게 한 것은 사진술의 발전이었다. 오랜 기간을 두고 같은 장소를 촬영한 사진 두 장을 준비한다. 그 중 한 장은 흰 바탕에 검은색으로 별이 찍혀있고 나머지 한 장은 색이 반전되어 있다. 이 상태에서 두 유리건판을 포개 놓으면 밝기가 변한 변광성만 남고 나머지는 상쇄되어 사라지게 된다. 리비트는 이 장비를 이용해서 수많은 변광성을 찾게 된다.
잠시 천문대를 떠나 유럽을 다녀온 리비트는 나빠진 건강 상태로도 계속 연구를 이어가게 된다. (이미 그녀는 청력에 문제가 생기고 있었다.) 여전히 이어지던 변광성 찾기에서 그녀의 주의를 끌게 된 것은 짧은 주기로 밝기가 변하는 변광성이었다. 긴 주기를 가진 변광성에 비해 짧게 금방 밝아졌다가 금방 어두워져 그 순간을 특정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었지만 리비트는 몇일 간 연속으로 찍힌 사진 속에서 단주기 변광성을 무더기로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대상은 남반구의 대표적인 성운이었던 마젤란 성운이었다. (지금은 우리은하 바깥에 있는 위성은하라는 점을 알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성운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 속에서만 무려 1777개의 변광성을 발견한 그녀는 그 중 16개 별의 광도 주기 곡선을 완벽하게 그려내면서 이상한 점을 확인하게 되었다. 밝게 보이는 별일수록 주기가 더 길게 나타난 것이었다.
지구에서 보는 관측자 입장에서 마젤란 성운에 있는 별까지의 거리는 거의 동일하다고 봐도 된다고 생각한 리비트는 ‘이 곡선에 어떤 의미가 있다.’라고 바로 단정 짓지는 않았다. 1908년에 발표된 자료에서 해당 내용을 간단하게 언급만 한 그녀는 더 많은 자료를 찾아야 했다. 16개의 별만으로 일반적인 설명을 이끌어내기는 부족한 감이 있었다. 1911년, 9개의 별의 광도-주기 곡선을 추가한 그녀는 총 25개의 별에서 기존의 결론이 맞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내용을 담은 1912년 3월 3일에 발표된 논문의 첫 줄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 “소마젤란 성운에 포함된 25개의 변광성에 관한 다음 내용은 리비트 양이 준비한 것이다.”
리비트가 찾은 변광성이 거리를 측정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은 확인했지만 그 기준이 될 눈금이 빠져 있었다. 아직까지는 해당 별이 다른 별보다 멀리 있다, 가까이 있다 정도만 확인할 수 있는 정도였다. 이를 해결해낸 것은 리비트 본인은 아니었다. 덴마크의 천문학자인 아이나르 헤르츠스프룽은 우리은하 내에 있는 세페이드 변광성을 연구하여 그 거리를 측정했고 이것은 리비트의 자에 눈금을 그어준 것이 되었다. 이제 천문학자들은 변광성만 보인다면 저 먼 곳에 있는 천체까지 거리를 측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이후 역사 속에서 리비트의 이름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녀의 이론으로 할로 섀플리는 우리은하 중심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고 에드윈 허블은 안드로메다 은하까지 거리를 측정하여 우리은하 바깥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게 된다. 이렇게 인류 머리 속 세상이, 우주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져 나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리비트는 1921년 12월, 53세의 나이로 암에 걸려 사망하고 만다.
그녀의 업적은 단순히 우주 속 천체의 거리를 측정하는 방법 중 하나로 좁혀 부를 수 없다. 리비트의 변광성을 이용한 허블의 발견은 단순히 ‘다른 은하가 있다.’라는 결론에서 멈추지 않고 우주가 끊임없이 팽창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나아갔다. 어찌보면 빅뱅우주론의 시작점이 그녀의 별이었던 것이다. 한없이 넓은 우주에서 거리는 곧 시간이며 그 긴 시간을 건너 온 과거의 역사였다. 리비트가 남겨준 25개 별의 흔적은 우주 거리 사다리의 한 칸이 아니라 우주 자체의 비밀을 여는 열쇠가 분명했다.
참고 자료
1. 조지 존슨(김희준 역). 2011. 리비트의 별. 궁리
2. 데이바 소벨(양병찬 역). 2019. 유리우주. 알마
3. 박민아. 2020. [과학의 결정적 순간들] 1912년 헨리에타 리비트가 변광성의 비밀을 밝혔을 때. HORIZON
4. 엘리자베스 호웰. 2016. Henrietta Swan Leavitt: Discovered How to Measure Stellar Distances. SPACE.COM
5. 멜리사 조스코우. 2016. From “Computer” to Astronomer: The Role of Women in Astronomy. NATIONAL AIR AND SPACE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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