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과학사: 비상하는 날개

 아주 오랜 기간, 하늘은 곤충과 조류, 그리고 몇몇 부유성 물체들이 지배하던 공간이었다. ( 물론 포유류 중에도 비행하는 생명체가 있기는 하다. 바로 박쥐. ) 정복 자체가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진 ‘하늘을 난다’라는 생각은 신화나 전설 속에서도 아주 극소수의 인간에게만 허용되었고 그 결말 역시 대부분 좋지 않았다. 당장 그리스 신화 속에 등장하는 이카로스와 파에톤의 결말은 어찌 되었는가. 모두 하늘에서 땅으로 추락하지 않았나.

야콥 페터 고비의 그림 ‘이카로스의 추락’
루벤스의 그림 ‘파에톤의 추락’


 이렇게 상상에서 멈출 것 같았던 비행을 실제로 실천하려 한 사람들은 꾸준히 있었다. 11세기 영국의 수도사 에일머는 날개 형태의 틀을 차고 건물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두 다리가 부러졌고 우리가 잘 아는 만능 학자 레오나르도 다빈치 역시 하늘을 나는 기계를 설계했다. ( 물론 그가 설계한 오르니톱터는 실제로 제작되지 못했으며 완성되었다고 해도 하늘을 나는 것이 불가능했다. ) 하지만 그 결과는 모두 실패. 여전히 하늘은 인간에게 길을 열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다빈치가 설계한 오르니톱터의 모습. 인간의 무게 때문에 새가 하는 날갯짓 정도로는 비행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상황은 1700년대 몽골피에 형제의 열기구가 등장하면서 반전되기 시작했다. 그들이 하늘을 날았던 방법은 간단했다. 공기 온도를 높여 상승기류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열기구는 1783년, 최초로 사람을 태우고 하늘을 날았다. 물론 열기구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곳곳에 존재했다. 날아가는 방향을 조정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지상 물체와 충돌을 막기 위해 탑승자가 입고 있는 옷까지 집어 던져야 했던 경우도 있었으며 착륙지에 정확하게 착륙하는 것 역시 바람의 허락 없이는 쉽지 않았다. 사용하는 기체의 불안정성으로 인한 안전성 문제도 심각했다. ( 최초의 열기구 탑승자였던 드로지에 역시 비행 중 가스폭발로 사망하고 만다. )

몽골피에 형제의 열기구 그림


 상하 운동만 조절이 가능했던 열기구를 벗어나 좀 더 자유로운 비행을 꿈꾼 사람들은 ‘글라이더’에 희망을 걸었다. 글라이더 비행의 대표 주자는 1800년대 후반의 공학자 오토 릴리엔탈이었다. 그는 형제였던 구스타프 릴리엔탈과 함께 ‘새’의 모습에 집중한 글라이더 개발에 착수했다. 그 이전에도 글라이더의 설계는 있었지만 릴리엔탈은 최초로 인간이 타고 날 수 있는 형태를 완성해냈고 1891년 비행에 성공했다. 수천 번의 비행 테스트를 진행하면서 글라이더에 엔진을 장착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1896년, 비행 중 15m 높이에서 추락하며 사망하고 만다. 그 역시 수많은 선배 도전자들처럼 비행의 꿈을 완성하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다.

릴리엔탈의 비행 모습. 거의 매달려 있는 상태에서 기계를 조종해야 했다.


 릴리엔탈의 퇴장에도 비행을 향한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대중과 언론에서 조롱받던 것과는 달리 나라별로 이 ‘비행 기계’ 개발에 투자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미국은 당시 스미소니언 연구소 소장이던 새뮤얼 랭글리가 이끄는 개발팀에 투자했으며 프랑스 역시 자국의 공학자 클레망 아데르의 기계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 중 랭글리는 무려 엔진을 사용한 동력 비행기를 제작 및 비행시키는 데 성공하기까지 했다. 남은 것은 사람을 태우는 것 뿐이었다.

새뮤얼 랭글리의 모습. 비록 비행에는 실패했지만 그는 당시 미국에서 손꼽히는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였다.


 이처럼 차근차근 세계 곳곳에서 비행 기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때, 스미소니언 연구소로 편지 한 통이 전해진다. 인간의 비행은 가능하고 이것을 실행하기 위해 여러 논문을 받아 연구하고 싶다는 내용이 담긴 이 편지는 미국의 작은 도시였던 오하이오 주의 데이턴에서 날아왔다. 작성자의 이름은 윌버 라이트. 그의 직업은 자전거 상회의 주인이었다.

라이트 형제의 모습. 콧수염이 없는 사람이 형인 윌버 라이트이고 있는 사람이 동생인 오빌 라이트이다.
윌버 라이트가 스미소니언에 보낸 편지. 이 편지에서 동력 유인 비행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윌버와 오빌 두 형제는 다른 개발자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랭글리가 더 강하고 가벼운 엔진을 통해 날아오르는 것에 집중했다면 그들은 날게 된 이후 어떤 방식으로 기계를 조정할 것인가에 신경을 썼다. 그 결과 날개를 휘어지게 만들면서 비행 안정성과 방향 조절하는 방식을 터득하게 되었다. 두 사람의 연구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자체적으로 풍동을 만들어 날개가 어떤 방식으로 제작되어야 비행에 유리한지 계속된 테스트를 시도했다. 그리하여 1902년, 1000여 번의 글라이딩으로 180m가 넘는 활공 기록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야 그들도 다른 연구자들처럼 엔진을 장착하는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라이트 형제의 훈련 모습


 1903년, 라이트 형제가 남들에게 알리지 않고 조용히 엔진 제작에 몰두하고 있을 때, 랭글리는 유인 동력 비행에 도전하였다. 고령의 랭글리 대신 젊은 조수를 태운 ‘에어로드롬’(당시에는 지금 우리가 아는 airplane라는 단어가 없었다.)은 포토맥강의 바지선 지붕에서 발사되었다. 그러나 발사대를 벗어나자마자 기계는 강물로 향하고 말았다. 첫 도전에 실패한 랭글러는 두 달이 지난 12월 8일. 다시 한 번 에어로드롬의 발사를 실시했다. 안타깝게도 두 번째 시도마저 처참한 실패로 끝난 도전은 많은 사람에게서 날아오는 비난을 정면으로 받아야 했다.

랭글리가 포토맥 강에 만든 발사대


 같은 시기, 고향을 떠나 훨씬 더 먼 시골인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키티호크에 실험실을 차린 라이트 형제는 자체적으로 개발한 엔진을 장착하고 비행 테스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12월 14일. 동전 던지기에 이긴 윌버가 탑승한 플라이어 호는 선로를 지나 하늘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긴장한 탓인지 너무 강하게 잡아당긴 방향타 때문에 자세도 제대로 못 잡은 채 기계가 위로 솟구쳐 오르고 만다. 추락 장소가 모래밭이었기 때문에 다치지는 않았지만 망가진 비행기는 수리가 필요했다.

 첫 도전에 실패한 라이트 형제는 3일 뒤 12월 17일 오전. 5명의 구경꾼 앞에서 다시 한번 비행을 시도했다. 애초에 오지에 만들어진 비행 장소이기도 했고 너무 추운 날씨 역시 사람들의 관심이 떨어지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오전 10시 35분, 오빌이 탑승한 플라이어 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레일을 떠난 기계는 하늘에 오르는데 성공했다. 비행 거리 36m, 비행 시간 12초. 조종에 실패하여 경로가 오락가락 했지만 이 때 남긴 숫자가 최초로 인류가 하늘에 제대로 남긴 발자국이었다. 첫 비행에 만족하지 못한 두 사람은 번갈아 가며 당일에만 3번의 비행을 추가로 진행했다. 마지막에는 무려 59초 동안 260m 가까이 비행하였다.

최초의 비행 순간


 라이트 형제는 최초 비행 이후 전 세계를 돌며 자신들의 기계를 선보였다. 프랑스 르망에서 윌버가 시범 비행에 성공했고 동생 오빌은 버지니아 주 포트마이어에서 1시간이 넘는 비행을 보여줬다. 그 이후는 그야말로 ‘비행의 시대’였다. 라이트 형제를 제외하고도 세계 곳곳에서 비행기들이 개발되었으며 누가 더 빨리, 멀리, 오래 나는가 경쟁하는 체제가 갖춰졌다. 그 과정에서 누가 가장 먼저 비행하였는가에 대한 논쟁부터 기술 특허 소송까지 여러 외부적 요인이 라이트 형제를 괴롭혔다. ( 스미소니언 연구소는 랭글리의 명예 회복을 위해 실패했던 에어로드롬을 개조하여 비행하게 만들었다. 거의 원형이 없을 정도로 많은 수정을 거친 상황이어서 랭글리의 명예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빌의 분노를 사기만 했다. )

2021년 화성에 착륙한 탐사 드론 인제뉴어티에는 플라이어 호에 사용된 날개 천 조각이 부착되어 있다. 인제뉴어티는 지구를 제외한 다른 행성에서 최초로 비행에 성공한 탐사선이 되었다.


 라이트 형제의 비행이 성공하기까지 이카로스 신화가 있던 고대 그리스부터 무려 200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에 반해 1917년 12월부터 우주 시대가 열린 지금까지는 고작 100년 조금 넘는 시간만 지났을 뿐이다. 하늘을 넘어 우주를 바라보는 요즘 시대. 전 지구는 비행기를 통해 훨씬 더 가까운 영향권으로 묶였으며 이는 기본 생활상 자체를 바꾸는 커다란 혁명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두 사람의 비행은 단순히 하늘을 날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을 실현시켰다는 것을 넘어 인류 문명의 발전에 불을 붙여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앞으로의 시간 동안 또 얼마나 많은 ‘비행’이 우리를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어줄지 기대된다.

참고자료

  1. 데이비드 매컬로. (2017). 라이트 형제(박중서 역). 승산
  2. 민태기. (2021). 판타 레이 – 혁명과 낭만의 유체 과학사. 사이언스북스
  3. 서진영. (2013). 자전거 팔던 라이트 형제가 大과학자 제치고 동력비행 성공한 이유는?. 동아비지니스리뷰
  4. 이성규. (2016). 자전거 수리공, 과학자를 이기다. Science Times
  5. 정해용. (2022). [20세기 스토리박물관4] 과학관 : 라이트형제 최초의 비행기. 이모작뉴스
  6. 최성우. (2017). 다용도로 활용된 글라이더의 역사. Science Times
  7. 송병규. (1998). 최초의 동력비행에 성공한 랭글리 교수. korea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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