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찾는다는 것은 지금 우리에게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당장 핸드폰만 봐도 어디로 가야할 지 목적지만 집어넣으면 길을 쉽게 알아갈 수 있다. 거기에 블록 형태로 정리된 도시에서는 주소만 보고도 길을 찾는 것 역시 약간의 노력으로도 가능하다. 하지만 시계를 조금만 과거로 돌려도 길을 찾는다는 것은 상당한 난이도의 작업으로 변하게 된다. 표지판은 커녕 사람의 흔적도 없는 미개척지가 넘쳐나고 다른 지역으로 가기 위해 심하면 목숨까지 걸어야 했던 과거에 ‘길찾기’는 생존과 직결된 미션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늘’은 인류가 방향을 알 수 있는 아주 좋은 수단이었다. 태양과 달은 모두 동쪽에서 올라오며 모든 별은 시기에 따라 같은 위치에서 뜨고 지는 것을 반복한다. 그 결과 하늘을 관측하는 행위는 아주 오래 전부터 이어져 왔다. 지금으로부터 약 4000년 전에 지어진 이집트 피라미드들의 네 측면은 동서남북 방향으로 정확하게 지어져 있다. 방위를 알려주는 도구인 나침반이 발명되기 훨씬 이전인 시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그 위치를 정확하게 알아내는 것은 천문학의 역할이었다.
이렇게 별 관측은 인류 발전사에 많은 영향을 줬다. 중요도는 과거만큼 크지는 않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날씨가 좋은 날 고개만 들면 별이 우리를 비춰주고 있다. 그 빛은 공평하게 지구 모든 곳에 내려앉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 이외에 다른 생명체들은 저 별빛을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을까. 그들도 저 별을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유리멧새
조류의 몇몇 종은 인류보다 훨씬 먼 거리를 매년 탐험하고 있다. 매 계절마다 더 유리한 서식지를 향해 날아가는 철새는 수천km에서 길게는 2만km 이상의 비행을 매년 진행한다. 이러한 긴 비행에서 항상 같은 서식지로 돌아오고 떠나는 것은 분명 그들에게 방향을 찾는 기준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철새가 어떤 기준을 가지고 여행을 하는지 알아보려는 실험은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그중 1957년 실행된 코넬 대학교의 스티븐 엠렌의 실험은 철새 중 일부 종이 밤하늘의 별을 이용하여 위치를 찾는다는 것을 증명했다.
엠렌이 실험에 참여시킨 새는 캐나다, 미국 지역에서 멕시코, 카리브해 지역으로 이동하는 유리멧새였다. 엠렌은 새끼 유리맷새를 천체투영관 안에서 길렀다. 그 과정에서 일부 새는 정상적인 형태의 밤하늘 형상을 보여줬고 나머지 새에게는 북극성이 아닌 오리온자리의 베텔게우스를 중심으로 도는 조작된 형태의 밤하늘을 보여줬다. 그랬더니 이주 시기가 왔을 때 정상적인 형태의 밤하늘을 본 새들은 기존의 방향으로 움직이려 했고 그 반대의 새들은 베텔게우스가 정북 방향인 것처럼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 실험은 유리멧새가 자신의 이주 방향을 유전적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별을 보면서 ‘학습’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 실제로 천체투영관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자라 밤하늘을 본 적이 없는 유리멧새들은 방향 자체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
쇠똥구리
긴 여행을 하는 조류와는 다른 이유지만 곤충 역시 밤에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태양빛이 없는 환경에서 곤충들은 천적을 피해 먹이를 찾아야 한다. 그중 2013년 쇠똥구리에 관한 아주 특이한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무려 곤충이 달도 아니고 별의 무리인 은하수를 방향키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쇠똥구리는 자신의 먹이인 똥을 굴려 동그랗게 만들고 나면 빠르게 위치에서 벗어나는 습성이 있다. 그 자리에 오래 머물 시 다른 쇠똥구리에게 기껏 만들어 놓은 먹이를 빼앗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쇠똥구리가 태양과 달빛을 이용해 방향을 잡는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달이 뜨지 않은 밤에도 쇠똥구리는 흔들림 없이 방향을 잡고 있었다. 이번에도 천체투영관을 이용해 은하수를 가리거나 빛을 조절해 쇠똥구리의 반응을 확인한 결과 별 한두 개가 아닌 은하수의 줄기 자체를 이용해 방향을 찾는다는 점을 알아냈다.
이 대표적인 예시 말고도 동물들이 천체를 어떤 방식으로 이용하는지 알아내려는 연구는 계속되고 있다. 2008년, 덴마크에서는 잔점박이물범을 이용하여 해당 동물이 별의 위치를 학습할 수 있는지 실험했다. 천체투영관에서 특정 별을 지정한 후 그 별을 향해 움직이도록 훈련 시키고 난 후 천체의 위치를 회전시켰더니 물범들은 여전히 알려준 별을 잘 찾아갔다. 이 실험은 물범이 ‘별을 이용해서 움직인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건 아니지만 별의 움직임을 학습할 가능성이 있음을 알려준다. 야행성 나방 역시 달이나 별을 이용해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가설이 있었으며 탈리투루스 살타토르라는 이름의 작은 갑각류는 태양과 달을 이용해 해변가에서 방향을 찾는다고 알려졌다.
물론 모든 생명체가 하늘의 별을 자신의 생존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철새 중에도 유리멧새처럼 별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 자기장을 이용하여 방향을 찾는 종도 존재한다. 상어와 바다거북 역시 지구 자기장을 자신만의 GPS로 사용하고 있다. 이 모든 생명체가 살아남기 위해 자신만의 방식을 개발해나가는 모습을 보면 생명에 대한 경외감이 들기도 한다. 지구는, 우주는 어느 생명에게나 공평하게 빛을 내리고 그 삶을 펼칠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 인류만이 하늘을 보고 우주를 느낄 수 있다는 건 오만한 생각이 아닐까.
참고 자료
1.리처드 도킨스. (2022). 마법의 비행 (이한음 역). 을유문화사
2. 베른트 하인리히. (2017). 귀소본능 (이경아 역). 더숲
3. 레오 그라세. (2018). 쇠똥구리는 은하수를 따라 걷는다 (김자연 역). 클
4. Charles Q. Choi. (2021). How Dung Beetles Roll Their Food in a Straight Line. Smithsonian Magazine
5. IAN O’NEILL. (2008). Seals Use Astronomy as Navigation Aid. UNIVERSE TODAY
6. 최민영. (2013). 쇠똥구리, 은하수로 길 찾는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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