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과학사: 우리는 이곳에 있다

우주에 만약 우리만 있다면 엄청난 공간 낭비겠지.

 칼 세이건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콘택트’에 등장하는 이 대사는 다른 외계 생명체가 있냐는 딸의 질문에 아버지가 대답하는 부분에서 등장한다. ‘우주에 우리만 있는가’라는 질문은 인류가 지구와 우주에 대한 인식이 넓어짐과 함께 떨어졌다. 우리가 바라볼 수 있는 우주의 크기가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커지면서 그 넓은 공간 속 또 다른 존재를 그려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외계인의 흔적은 우리 주변에서 찾기 어려웠다. 과연 그들은 우리를 알고 있기는 한 걸까. 이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 1974년 11월 14일. 인류는 직접 외계인에게 메시지를 보내기로 한다. 그 이름하여 ‘아레시보 메시지’였다.

영화 콘택트의 포스터. 아쉽게도 원작자인 칼 세이건은 이 영화의 개봉 전에 세상을 떠났다.


 외계인과 외계생명체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외계 생명체는 미생물, 단세포 생물 등 생명의 초기 단계에 있는 모든 것들을 포함한다. 그에 비해 외계인은 그야말로 우리와 지적인 대화가 가능한 ‘지적생명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많이 쓰인다. 그런 관계로 지적 생명체를 찾으려는 방법은 일반적인 외계생명체를 찾는 방법과 달라야 했다. 최소한 그들 역시 우리처럼 지적인 능력을 가졌다면 그들만의 통신 방식을 개발했을 것이며 그 통신의 흔적을 찾으면 된다는 생각이 나온 것이다. 그리하여 1960년, 미국의 전파천문학자 프랭크 드레이크에 의해 오즈마 계획이 시작되었다.

아레시보 전파망원경의 과거 모습


 오즈마 계획은 간단했다. 태양과 비슷한 항성인 고래자리 타우별과 에리다누스자리 입실론 별을 특정 파장의 전파로 관측하여 이상징후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두 별에서는 아무런 특이점을 찾을 수 없었다. ( 그중 에리다누스 입실론을 관측할 당시에는 특이 신호가 포착되었지만 추후 공군 기지에서 나온 전파라는 것이 밝혀졌다. ) 물론 실망하기는 일렀다. 고작 태양에서 10광년 남짓 떨어진 별 2개만 관측했을 뿐이었다. 당연하지만 통계적으로 이 방법이 결과를 얻으려면 훨씬 더 많은 관측이 필요했다. 실패했던 오즈마 계획은 덩치를 키워 외계 지적 생명체 탐사(SETI, 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로 간판을 바꿔달았다. 훨씬 더 많은 천체를 탐색하기 시작했고 여기에 1950년대부터 건설 중이던 아레시보 전파망원경이 완공되면서 그 힘을 더했다.

오즈마 계획을 실행했던 그린뱅크의 26m 전파망원경의 모습


 이렇게 외계 지적 생명체 탐사가 그 시작을 알리고 있을 때, 드레이크는 언제 올지 모르는 전파 신호를 감지하는 것을 넘어서 또 다른 계획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 생명체들이 전파를 이용할 줄 안다면 반대로 우리가 보내는 신호 역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생각을 처음 실천한 곳은 드레이크의 주 전공인 전파망원경이 아니라 행성 탐사선 파이어니어 10호와 11호였다. 태양계를 벗어날 계획을 가진 최초의 탐사선인 파이어니어호에는 드레이크와 세이건이 구상한 금속판이 설치된다. 태양계의 위치, 모습, 수소 원자모형, 남녀의 모습 등의 정보를 그려 놓은 금속판은 인류가 최초로 우주로 보낸 메시지였다. 단 그림 해석의 난이도도 난이도지만 탐사선의 속력으로 금속판이 멀쩡히 다른 항성계에 도착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다. ( 파이어니어 10호는 최소 9만년 정도가 지나야 다른 별에 근접하게 된다. )

파이어니어 10호에 달린 금속판의 모습. 이 금속판을 제작한 칼 세이건은 5년 뒤 보이저 탐사선에도 여러 정보를 담은 금속 음반을 달게 된다.


 파이어니어 탐사선이 발사된 이후 드레이크는 조금 더 해석하기 쉬운 형태의 메시지를 구상하기 시작한다. 외계에 보내는 메시지는 ‘무엇을 보낼 것인가’라는 질문도 중요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보낼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으면 성립 자체가 안 된다. 같은 지구에서 등장한 문명인데도 아직 고대 유물에 적힌 내용을 알아내지 못한 경우도 많다. 그런데 아예 다른 행성에서 발전한 문명끼리 쉽게 의사소통을 할 거란 기대는 접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도 알고 우리도 아는 공통된 무언가를 사용해야 하는데 어떤 것이 이 어려운 공통분모에 속할 것인가. 그 주인공은 수학이었다.

 그들이 정말 발전한 과학 기술을 가졌고 우리가 보내는 신호를 받을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면 당연하게도 ‘수학’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린다. ‘숫자를 부르는 말은 다를 수 있어도 수의 본질은 우주 어디에서나 같아야한다’라는 생각은 드레이크가 메시지를 작성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0과 1로 이루어진 이진법을 사용한 메시지는 총 1679개의 신호를 가지고 있었다. 1679라는 숫자에는 이 메시지를 해독할 수 있는 힌트가 들어있다. 73과 23이라는 두 소수를 곱해야만 나올 수 있는 1679는 메시지를 수신한 문명이 소수에 대한 이해가 뛰어날 거라는 생각이 들어있다. 해당 메시지를 가로 23칸, 세로 73줄로 늘어놓으면 드레이크가 구상한 메시지가 그림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 만약 그 문명이 메시지를 가로 73칸, 세로 23줄로 늘어놓으면 어찌 될까? 당연히 아무 의미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정도 문명이라면 방법을 바꿔 정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

아레시보 메세지와 그 해석. 이진법을 해석하는 방법부터 DNA를 구성하는 원자, DNA 구조, 인간의 모습, 태양계의 모습, 아레시보 망원경의 모습까지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다.


 드레이크는 해당 메시지를 여러 지인에게 보내 해독해내는지 알아내려 했다. ( 그 대상에 칼 세이건도 포함되어 있었다. ) 사람마다 메시지를 다르게 해독한다면 외계 문명에게 우리의 정보를 완전히 잘못 줄 수 있었다. 다행히 테스트 결과는 좋았다. 이제 ‘어디에’ 메시지를 보낼지 선택해야 했다. 고개를 돌릴 수 있는 다른 전파망원경과 달리 땅에 파묻혀 있는 형태의 아레시보 망원경은 신호를 보낼 수 있는 각도가 제한적이었다. 리스트를 살펴보던 그의 시선을 사로 잡은 것은 헤라클레스자리에 자리잡은 M13 구상성단이었다. 메시지를 해석할 정도의 수준을 생명체가 갖추려면 최소한 나이가 많은 별 주변에 자리 잡았을 것이고 그러한 별이 무수히 많이 모인 헤라클레스 성단은 아주 적합한 목적지로 보였다. 그리하여 ‘무엇을’, ‘어떻게’, ‘어디로’ 보낼지 결정된 메시지는 단 3분의 시간 동안 우주를 향해 출발하였다.

헤라클레스 구상성단(M13)의 모습


 아레시보 메시지가 목적지인 헤라클레스 성단에 도착하려면 약 2만 5천 년이 걸린다. 성단이 지구 방향으로 다가오고 있으니 그 신호가 다시 돌아오는 것은 그보다 짧게 걸리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 대답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성단의 움직임 때문에 신호가 도착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연구 결과도 등장했다. 그렇다면 이 모든 행동이 아무 의미없는 것이었을까. 사실 아레시보 메시지는 그 결과를 기대하기보다 상징적인 의미가 더욱 컸다. 우리 인류가 이런 일을 할 정도로 기술이 발전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였으며 아레시보 전파망원경으로 진행되는 세티 프로젝트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대중에게 인식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

세티 홈의 모습. 세티 프로젝트가 민간 프로젝트로 전환되면서 인공적인 전파를 구별하기 위해 개인용 컴퓨터의 네트워크를 사용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비록 세티 프로젝트 자체는 현재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해 NASA 주도 프로젝트에서 민간 프로젝트로 성격이 변했고 사람들의 관심도 언제 나타날지 모를 지적 생명체 탐사보다 원시 수준이어도 생명체가 생존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외계 행성 탐사 쪽으로 넘어가고 있다. 하지만 외계에 신호를 보내는 방식 자체는 멈추지 않았다. 마침 올해 초, 2024년에 있을 아레시보 메시지 송출 50주년을 기념하여 여러 나라의 연구진들이 합심해 새로운 메시지 초안을 공개했다. 새 메시지에는 드레이크가 작성했던 내용에서 수정되거나 추가되는 것도 있으며 심지어 메시지의 회신 주소도 포함되어 있다. 이 새 메시지가 정말로 2024년에 보내질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1970년대와 다르게 현재는 외계 지적 생명체에 신호를 보내 우리 위치를 알려주는 것이 위험한 행동이 아닌가 하는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 이러한 주장을 한 사람 중 가장 잘 알려진 사람은 스티븐 호킹일 것이다. )

올해 새로 제안된 메세지 중 일부. 태양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첫 메시지 이후 시간이 많이 흘러 현재는 계획을 주도한 칼 세이건도 프랭크 드레이크도 세상을 떠났고 인류 전파천문학의 역사이자 세티 프로젝트의 받침대였던 아레시보 전파망원경도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졌다. 수만 년, 어쩌면 수십 만년이 지나도 그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지적 생명체 탐사. 과연 오랜 시간이 흘러 그들이 답장을 보냈을 때, 우리는 여전히 이곳에 남아 그 편지를 받을 수 있을까. 이 문제가 프로젝트의 가장 큰 마지막 걸림돌이 아닐까 싶다.

프랭크 드레이크의 젊은 시절 모습. 평생을 외계 생명체 탐사에 바친 그는 올해 2022년 9월 2일 세상을 떠났다.

참고문헌

1. 칼 세이건. (2004). 코스모스 (홍승수 역). 사이언스 북스
2. 닉 레인 외. (2021). 외계생명체에 관해 과학이 알아낸 것들 (고현석 역). 반니
3. 최강신. (2022). 왼손잡이 우주. 동아시아
4. 칼 세이건. (2016). 칼 세이건의 말 (김명남 역). 마음산책
5. 박경미. (2021). 수학비타민 플러스 UP. 김영사
6. 나디아 드레이크. (2014). 40 Years Ago, Earth Beamed Its First Postcard to the Stars. NATIONAL GEOGRAPHIC
7. 이광식. (2020). [이광식의 천문학+] 우주로 보낸 지구 행성인의 ‘아레시보 메시지’. Now news
8. 이명헌. (2019). 어딘가 있을 외계인에게 ‘인류의 존재’를 알릴 것인가 말 것인가. 경향신문
9. 곽노필. (2022). 50년만에 새로 쓴 ‘외계인에게 보내는 편지’…엇갈린 시선.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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