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그린 화가로 가장 대중적으로 유명한 사람은 아마 빈센트 반 고흐일 것이다. 다양한 그림 속에서 별과 달과 하늘을 그렸던 그는 어떤 별자리를 그림 속에 숨겨 놓았을까. 실제로 그가 언제 어떤 하늘을 보고 그림을 그렸는지 추적했던 과학자들이 있었다. 우리 역시 그 길을 따라 1800년대 후반 고흐의 시선을 따라가 보도록 하자.
고흐 – 밤의 카페 테라스
1888년 가을에 그려진 이 그림은 고흐가 프랑스 남부 아를 지역에 머물 때 완성되었다. 정확한 완성 날짜는 알기 어렵지만 고흐가 동생에게 보낸 9월 9일 편지에 ‘밤의 카페’ 그림이라는 언급이 나온 것으로 봐서 최소 9월 초중순 안에 그려진 그림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더 재미있는 사실은 그림 속 카페가 현재까지도 그대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고흐가 카페를 그린 각도를 살펴보면 포룸 광장에서 정남쪽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1888년 9월 초 남쪽 하늘에서 보일만한 별자리는 어떤 것이 있을까. 미국의 미술사학자인 캘리포니아 대학의 알버트 보임 교수는 해당 별자리를 물병자리로 판단했다. 그림 속 손님 숫자가 적은 것을 근거로 밤 11시 언저리에 그려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반대로 하버드 천체물리학 교수였던 찰스 휘트니는 해당 시간을 초저녁으로 보고 전갈자리라고 주장했다. 전갈자리는 물병자리에 비해 밝은 별이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카페 건물 틈 사이로 확인하기엔 조금 더 적합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과연 고흐가 본 별자리는 전갈이었을까 물병이었을까. 아니면 단순히 그의 머릿속에서 재창작된 별의 나열이었을까. 카페의 조명이 하늘에 닿아 빛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아름다운 그림에서 고흐는 어떤 말을 하고 싶었을까.
고흐 –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밤의 카페 테라스에서는 어떤 별자리가 그림 속에 등장하는지 확실히 알아내기 어려웠다면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에는 너무나도 확실한 별자리가 정확히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서양에서는 큰곰자리라 불리고 우리나라에서는 북두칠성으로 익숙한 모습이 눈에 확 들어온다. 밤의 카페 테라스와 같은 달인 1888년 9월에 그려진 이 그림은 역시 그의 편지를 확인했을 때 월말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렇게 평화롭게 지나갈 법한 그림에도 뭔가 이상한 점이 담겨있다. 북두칠성의 각도를 보면 해당 그림이 정확하게 북쪽 하늘을 담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아를에 설치된 ‘고흐가 그림을 그린 장소’ 표지판에 따르면 해당 방향은 북쪽이 아니다. 고흐가 당시 살던 집에서 오래 움직이지 않고 나오는 론강 변의 각도에서 보이는 하늘은 서쪽 하늘인 것이다. 과연 이 그림에서 고흐는 보일 수 없던 북두칠성을 이용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일까. 눈에 보이지 않아도 북두칠성이 그림의 한가운데 자리 잡아 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걸 보면 고흐의 마음에 쏙 든 별자리가 아니었나 싶다.
고흐- 별이 빛나는 밤
보통 ‘빈센트 반 고흐’라고 하면 떠오르는 유명 그림이 여러 장일 것이다. 자화상, 해바라기 연작, 까마귀가 나는 밀밭 등등. 그러나 나에게 고흐의 이름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림은 바로 이 그림. 별이 빛나는 밤이었다. 앞서 소개한 두 그림을 그린 후 약 3개월이 지나 자신의 귀를 직접 자른 고흐는 자진해서 생레미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1889년 6월. 불후의 명작이 된 별이 빛나는 밤이 정신병원에서 그려지게 된다. 이 그림에서 시간대를 알 수 있는 힌트는 달에 있다. 그림 속 달의 형태는 그믐달이다. 새벽에 확인이 가능한 달인 만큼 시간대가 새벽이라는 점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거기에 6월 18일에 쓰여진 편지에 이 그림이 언급된 것으로 봐서는 최소 그 이전에 완성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럼 1889년 6월 언저리 프랑스 새벽 밤하늘에는 어떤 별이 떠 있었을까.
이상하게도 6월 중순 밤하늘에는 그믐달이 아니었다. 시간을 조금 더 뒤로 돌려보자. 5월 말 드디어 그믐달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밤하늘에서 유독 튀는 것은 달 하나가 아니었다. 달 다음으로 밤하늘에서 밝게 보이는 행성. 금성이다. 많은 학자가 나무 오른편에 밝게 표시된 천체의 정체는 금성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근처에 있는 별자리 중 그림에 표현된 것은 무엇일까. 약간의 거리 비율 차이가 나지만 주변에서 가장 밝은 별자리는 양자리이다. 공교롭게도 고흐의 생일 별자리가 양자리였다고 하는데 마침 그의 눈에 들어 이 그림에 자리잡았다고 하니 그 의미가 더 크게 다가온다.
당시 고흐는 낮에 캔버스에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아마 그 과정을 거치면서 개별적으로 눈에 담은 하늘을 한 화폭에 넣어야 했을 것이다. 그 결과 천체 간 거리 비율이 약간 깨진 것이 아닐까 한다.
고흐의 작품들은 그 생전에는 빛을 보지 못하다가 마치 그의 죽음으로 완성되었다는 듯 뒤늦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무수히 많은 좌절과 실패로 가득했던 그의 삶 속에서 별은 어떤 의미가 되어주었을까. 그림 속 반짝거리는 별들은 이미 사라진 고흐와 달리 지금 이순간에도 하늘에서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다. 한 번 실제 별자리를 바라보고 다시 그의 그림을 살펴보자. 끝도 없이 내뿜는 별빛이 그의 그림 속에 스며들어 있다. 어쩌면 우리는 고흐가 느꼈을 그 감정의 파편을 별이라는 도구를 통해 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참고자료
1. 김선지, 김현구. (2020). 그림 속 천문학. 아날로그(글담)
2. 이소영. (2012). 실험실의 명화. 모요사
3. 최연욱. (2016). 반 고흐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 할 32가지. 소울메이트
4. https://vangoghletters.org/vg/letters.html (반 고흐의 편지 모음)
5. Albert Boime. (1984). Van Gogh’s Starry Night: A History of Matter and a Matter of History
http://www.albertboime.com/Articles/Dec1984.pdf
6. 이태형. (2015). 고흐 그림 속 비밀. The science times
https://www.sciencetimes.co.kr/?news=%EA%B3%A0%ED%9D%90-%EA%B7%B8%EB%A6%BC-%EC%86%8D-%EB%B9%84%EB%B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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