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과학사: 운동하는 물체의 전기동역학에 관하여

1905년 6월 30일. 물리학연감(Annalen der physik)의 편집자는 한 편의 논문을 받게 된다. ‘운동하는 물체의 전기동역학에 관하여(On the Electrodynamics of Moving Bodies)’라는 제목의 이 논문을 발송한 사람은 베른의 특허국 사무소에서 근무하는 26살 직원으로 박사 학위조차 받지 못한 인물이었다. 같은 해 9월 26일에 출간된 이 논문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논문 중 하나가 되었으며 이름 역시 조금 다르게 불리기 시작했다. 그 이름은 ‘특수 상대성 이론’. 작성자의 이름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었다.

젊은 아인슈타인의 모습

1900년을 전후로 물리학계는 커다란 소용돌이에 빠져 있었다. 뉴턴이 완성한 역학과 맥스웰이 마무리한 전자기학의 두 축이 지키던 물리학에서 새로운 현상들이 끊임없이 발견되고 있었다. ‘역학의 커다란 내용은 이미 다 발견되어서 더는 연구할 것이 없다.’(1800년대 독일의 물리학자였던 필립 폰 졸리의 말)라는 이야기가 나온 지 20년도 채 되지 않아 X선 발견(1895년 뢴트겐), 전자 발견(1897년 톰슨) 등 새로운 물결이 끝도 없이 몰아치는 상황. 학자들은 새로운 발견에 적응해야 했고 그에 맞춰 새로운 이론이 등장해야만 했다.

스위스 베른에 있는 아인슈타인 박물관. 아인슈타인이 실제로 살던 집을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아인슈타인은 주류 물리학계와는 거리가 먼 외딴 섬이었다. 특허국 직원이라는 직업은 그를 더욱 고립시켰다. 그런 고독 속에서 그의 머리를 가득 채운 것은 당시 물리학계를 괴롭히던 몇 가지 모순이었다. 맥스웰이 완성한 방정식을 풀어보면 빛의 속도가 상수로 풀어진다. ‘상수’라는 의미는 변하지 않는 수이다. ‘빛의 속도는 진공상태에서 일정하다.’라는 광속 불변의 법칙을 맥스웰 방정식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반면에 뉴턴 역학에서 중심이 되는 원리는 갈릴레이의 ‘상대성 원리’였다. 이 원리에서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너무나 간단하게 체감할 수 있는 속도 합산의 정리가 적용된다. 시속 100km로 달리는 차 안에서 운동 방향으로 10km의 속도의 공을 던지면 정지된 관측자는 시속 110km의 공을 보게 된다. 이렇게 서로 다른 운동을 하는 상황에서 속도가 더해지고 빼지는 것을 속도 합산의 정리라 한다. 그런데 빛은 이런 속도 합산을 전혀 따르지 않는 것이다. 내가 빠르게 움직이나 느리게 움직이나, 심지어 빛의 속도에 가깝게 움직여도 빛은 언제나 똑같은 속도를 가진다. 그렇다면 상대성 원리와 광속 불변의 법칙 둘 중 하나는 잘못된 것일까?

움직이는 기차 안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멈춰 있다고 느끼지만 기차 밖에서 보면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운동 상태가 다르게 확인되는 것이 갈릴레이의 상대성 원리이다.

맥스웰과 뉴턴이 세운 물리학의 두 기둥이 정면충돌하는 위기에 처한 순간. 학자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거나 두 이론을 충돌시키지 않을 방어막을 찾아내 건물이 붕괴하는 것을 막아야 했다. 과연 어느 쪽을 무너뜨려야 할지 많은 사람이 고민할 때 아인슈타인은 둘 모두를 선택하는 기이한 일을 벌인다. 먼저 광속 불변의 법칙. 빛의 속도가 어느 상황에서도 변화가 없다는 것은 단순히 맥스웰의 공식에서 유도한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미국의 물리학자 마이켈슨과 몰리의 실험에 의해 지구 공전 속도와 상관없이 빛의 속도가 일정하다는 점이 확인된 것이다. 이것 말고도 빛의 속도와 관련된 여러 실험에서 광속 불변의 법칙이 증명되었다. 그렇다면 문제는 상대성 원리에 있는 것 같은데 그때까지 이 원리에서 아무런 문제를 찾지 못했었다. 결국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원리와 광속 불변의 법칙을 모두 포용하면서 다른 개념 한 가지에 칼을 댄다.

뉴턴과 맥스웰의 모습

아인슈타인이 공격한 것은 다름 아닌 시간과 공간이었다. 뉴턴의 물리에서 시간과 공간은 절대적이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흐르며 물체는 누구에게나 똑같은 크기를 가진다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이 생각을 부수는 순간 양립할 수 없던 두 이론이 손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멈춰있는 사람의 양쪽에 ‘동시’에 번개가 쳤다고 가정하자. 이때 움직이고 있던 사람이 같은 장면을 봤을 때도 두 번개는 ‘동시’에 일어났을까? 아인슈타인의 개념 대로면 절대 ‘동시’일 수 없다. ( 빠르게 움직이는 만큼 정보를 받는 시간이 달라질 테니까. ) 같은 사건인데 누가 어떤 상태로 보느냐에 따라 시간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관측자의 측정 데이터를 연결하기 위한 변환 방정식 또한 논문에 같이 실리게 된다. 이것을 이용하면 상대성 원리의 틀 안에서 광속 불변의 법칙이 똑같이 도출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아인슈타인의 개념 자체는 혁신적이고 파괴적이었지만 그가 생각한 과정 중 등장한 몇 가지 내용은 이미 학계에 발표된 바가 있었다. 그가 유도한 방정식의 이름이 아인슈타인 변환식이 아니라 ‘로렌츠 변환식’이라는 점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네덜란드의 물리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였던 로렌츠 역시 아인슈타인처럼 빛의 속도에 의해 생긴 모순을 해결하려 했다. 그 과정에서 신기한 개념을 주장하는데 바로 ‘길이 수축’이었다. 마이켈슨-몰리 실험에서 측정 도구의 길이가 수축하는 현상이 발생하였기에 빛의 속도 예측값과 측정값이 달랐다고 본 것이다. 이 과정에서 ‘로렌츠 변환식’을 유도하여 문제점을 해결하려 했다. 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상대성이론의 문턱까지 다가간 과학자가 또 있었다. 프랑스의 수학자였던 앙리 푸앵카레는 아인슈타인보다 이른 시기에 상대성이론의 많은 부분을 이미 발표한 상태였다. ‘동시’라는 단어가 가지는 문제점을 파악했으며 로렌츠의 이론을 한 단계 발전시키게 된다.

로렌츠와 푸앵카레의 모습

이렇게 기존에 있던 개념인데도 아인슈타인이 역사에 더 커다란 이름을 남기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로렌츠도 푸앵카레도 끝까지 절대 시간과 절대 공간이라는 개념에 묶이고 만 것이다. 그들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론을 만들었을 뿐 아인슈타인처럼 판을 엎어버릴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 심지어 두 사람은 아인슈타인의 발표 이후로도 상대성이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완성되고 난 뒤, 물리학계는 서서히 끓어오르는 물처럼 반응하기 시작했다. 이론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연구 결과부터 찬사를 보내는 사람들까지. 그들의 열광적인 반응은 특허청 직원이던 아인슈타인을 대학교수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과학계 변두리의 젊은이가 전 세계가 주목하는 슈퍼스타로 재탄생한 순간이었다.

아인슈타인의 학술 모임이었던 올림피아 아카데미. 이 모임에서 아인슈타인이 푸앵카레의 저작을 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과학자가 같은 문제점에서 출발하여 비슷한 결과물을 눈앞에 뒀음에도 그 마지막 단계에서 망설이고 있을 때 아인슈타인은 판 자체를 뒤집어버리는 초강수를 뒀다. 그의 이론은 이후 ‘일반 상대성이론’으로 확장되었고 지금까지도 여러 방면으로 증명되고 있다. 단 한 걸음의 차이. 그 작은 차이가 역사에 커다란 발자국으로 남겨진 것이다. 현대 물리학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라는 커다란 기둥 두 개가 지탱하고 있다. 실제 두 이론을 연결하려는 노력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고 어느 정도 소기의 성과도 거둔 상태이다. 1900년대의 과학계처럼 수많은 이론과 관측과 실험이 소용돌이치는 지금, 어느 순간 새로운 물결이 아인슈타인이 만든 현재 우리의 세상을 뒤집으려 다가오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참고문헌

1. 존.S.릭던. (2006). 1905년 아인슈타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 (염영록 역). 랜덤하우스코리아
2. 토마스 뷔르케. (2010). 물리학의 혁명적 순간들 (유영미 역). 해나무
3. 양젠예. (2021). 과학자의 흑역사 (강초아 역). 현대지성
4. 조송현. (2020). 우주관 오디세이. 인타임
5. 김재영. (2017). 에테르와 상대성이론. 한국물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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