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도 없고 카메라도 없던 시절, 자신이 본 것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마 그림이었을 것이다. 고대 원시인들이 벽화를 통해 자신들의 흔적을 남긴 이후 인류 역사에서 그림은 그 시대의 문화와 생활상 등 다양한 것을 볼 수 있는 창이 되어 왔다. 이러한 그림 중 하늘에 밝게 빛나는 별자리들이 숨어있는 경우들이 많이 있다. 과연 그림 속에서 별자리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빛을 발하고 있을까.
티치아노 – 바쿠스와 아리아드네
티치아노 베첼리오는 르네상스 시대 유럽 최고의 화가로 이름을 날렸던 사람이다. 종교, 역사, 고전, 초상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당대 최고의 화가가 되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카를 5세의 총애를 받던 그의 작품은 지금까지 미술사적으로 큰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그의 작품 중 바쿠스와 아리아드네는 북쪽왕관자리 신화 속 한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신화 속 영웅 테세우스에게 버림받은 아리아드네는 상심하던 도중 술의 신 디오니소스(바쿠스)의 청혼을 받게 된다. 오른쪽에 그려진 추종자들과 가운데에서 역동적인 모습으로 나타난 디오니소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왼쪽 윗 편을 자세히 살펴보면 작은 점들이 별자리처럼 동그랗게 모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디오니소스가 선물한 북쪽왕관자리로 알려져 있다. 티치아노는 신화 속 장면에 별자리를 포함 시켜 그 모습을 완성 시킨 것이다.
아담 엘스하이머 – 이집트로의 피신
엘스하이머는 17세기 초에 활동한 독일의 화가로 32살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친 비운의 천재이기도 하다. 그가 죽기 1년 전에 완성된 이집트로의 피신은 최초의 밤 풍경화로도 많이 알려진 작품이다. 유대 왕 헤롯의 영아 학살을 피해 이집트로 피난을 가는 성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 속 하늘에는 아주 흥미로운 점이 많이 있는데 일단 은하수가 무수히 많은 별로 구성되어 있다. 추가적으로 별자리 역시 그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림의 정중앙에 밝게 보이는 것이 사자의 심장인 레굴루스이다. 그 별 주변부로 사자자리의 형상이 어렴풋하게 보인다. 한쪽 구석에는 북두칠성으로 보이는 모습이 정확하게 눈에 띄는데 4번째 별(메그레즈)이 가장 어두운 것까지 그럴듯하게 표현했다. 이렇게 다양한 천문학적 요소들이 들어간 그림이지만 엄밀히 말해서 그 위치가 잘 고증이 된 것은 아니다. 사자와 큰곰 두 별자리의 위치와 은하수의 위치는 실제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거기에 저렇게 밝은 보름달과 은하수가 동시에 보이는 것 역시 실제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이는 작가가 별자리 및 밤하늘 모습을 따와서 상징적 의미를 담아 사용하였기에 생긴 현상이다. (이 그림이 성경 속 장면을 담아 종교적 색채가 짙은 작품이라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루벤스 – 달빛 풍경
루벤스는 아담 엘스하이머와 같은 시기에 활동한 네덜란드의 화가이다. 엘스하이머와 달리 화려한 삶을 산 루벤스는 바로크 양식의 대가로 이름을 높였는데 그의 그림에 영향을 준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엘스하이머였다고 한다. 루벤스의 말년에 그려진 달빛 풍경에는 앞서 소개한 이집트로의 피신처럼 어둑어둑한 하늘이 표현되어 있지는 않지만 밝게 빛나는 달과 푸른 빛 하늘에 무수한 별이 잘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도 다양한 별자리의 형태를 만나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그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별자리는 카시오페이아자리와 전갈자리이다. 나무 위쪽으로 똑바로 서 있는 전갈의 모습과 반대편 하늘에 누워있는 카시오페이아의 형태가 눈에 띈다. 다만 이 그림에서도 별자리의 위치는 그다지 고증되어 있지 않다. 가을철에 주로 보이는 카시오페이아와 여름철에 보이는 전갈자리가 한 하늘에 나타나려면 거의 북쪽과 남쪽 하늘 정 반대편에 위치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그 사이에 위치한 아주 작게 표현된 오리온자리는 심지어 겨울철 별자리이니 절대 한 번에 보일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약 5년에 걸친 그림 제작 기간 도중 보인 많은 별자리를 한 번에 표현하다가 생긴 현상이 아닐까?
밀레 – 별이 빛나는 밤
밀레는 19세기를 대표하는 프랑스의 화가로 이삭 줍는 여인들, 만종으로 유명하다. 그의 그림 중 별이 빛나는 밤은 아름다운 밤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똥별 모습까지 뚜렷하게 그려져 있다. 그가 밤 산책을 하면서 본 풍경을 그린 그림이라고 하는데 여기에서도 별자리가 숨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른쪽 별들 사이에서 오리온의 벨트가 뚜렷하게 보인다. 다만 벨트 아래 의문의 밝은 별이 있는데 위치상으로 오리온의 1등성인 리겔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반대편에 존재하는 밝은 별은 밤하늘에서 가장 밝은 별인 시리우스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실제 위치상으로 보자면 작은개자리의 프로키온이 좀 더 정확해 보인다. ( 물론 주변부 별의 형태를 보았을 때 큰개자리로 보는 것이 타당한 것 같기도 하다. ) 이 역시 밀레가 그린 밤하늘이 정확한 한 시점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긴 시간이 켜켜히 쌓인 모습이어서 생긴 현상이 아닐까.
다음 편에 계속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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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agazine.hankyung.com/money/article/202101212464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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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9/16/201909160286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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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articles.adsabs.harvard.edu/cgi-bin/nph-iarticle_query?db_key=AST&bibcode=2011ASPC..441…23H&letter=0&classic=YES&defaultprint=YES&whole_paper=YES&page=23&epage=23&send=PDF+%EB%B3%B4%EB%82%B4%EA%B8%B0&filetype=.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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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Martin Beech. (1988). Millet’s Shooting Stars. Journal of the Royal Astronomical Society of Canada.
https://articles.adsabs.harvard.edu/pdf/1988JRASC..82..349B
6. 김선지, 김현구. (2020). 그림 속 천문학. 아날로그(글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