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3월 16일, ‘큰 적색편이를 가진 준성 천체’라는 제목의 두 쪽짜리 논문이 네이처 지에 실리게 된다. 이 논문을 작성한 저자 마르텐 슈미트는 3년 뒤인 1966년, 타임지의 표지를 장식하는 인물이 된다. 슈미트의 발견이 도대체 무엇이었길래 당시 엄청난 파급력을 가지게 된 것일까.
슈미트의 발견 이전 1950년대부터 천문학계에서는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전쟁으로 인해 발전된 전파 기술이 천문학에 접목되어 전파천문학이라는 새 장르가 개척된 것이다. 유리와 렌즈를 이용하는 광학망원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무기를 장착한 천문학자들은 하늘에서 새로운 신호들을 잔뜩 수집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천체인 태양으로부터의 전파 수신부터 전혀 정체를 알 수 없는 천체의 신호까지. 이런 다양한 전파 신호를 정리한 카탈로그까지 나오게 되는데 이것이 케임브리지 목록이라고 불리게 된다. 다만 이 목록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전파 신호가 나오는 곳이 정확히 어디인지 알 수 없던 것이다. 광학 망원경으로는 수많은 천체가 촬영되는데 전파 망원경으로 봤을 때는 그 천체 중 어디서 전파가 나오는 건지 확인이 안 되고 있었다. 이건 마치 눈을 감고 냄새만으로 음식의 위치를 찾아 헤매는 수준이었다. 전파 망원경의 성능이 제대로 올라오지 않아서 생긴 문제인데 과학자들은 언제나 그렇듯 해답을 찾아내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전파 간섭계의 발전은 전파원에 대한 포위망을 좁히고 있었다. 그렇게 특정된 전파원 중 굉장히 특이한 천체가 하나 잡힌다. 다른 것들은 범위가 크거나 희미하여 은하로 추정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3C48(케임브리지 3번째 전파원 목록 48번)로 불린 이 천체는 일반별처럼 보이고 있었다. 1960년, 이 천체의 광학 촬영에 성공한 앨런 샌디지는 해당 별의 스펙트럼을 분석하게 된다. 하지만 결과는 오히려 과학자들을 혼란에 빠트리고 만다. 전에 본 적이 없던 이상한 스펙트럼 형태가 등장한 것이다. 별처럼 보이지만 전에 없던 스펙트럼을 보이는 천체는 이후 하나가 더 발견된다. 3C273이라 불린 이 천체는 달의 엄폐 현상을 통해 위치가 특정되었다. ( 달이 천체 위를 지나가면서 전파가 막히는 순간을 이용하여 위치를 특정했다. ) 그 특정된 위치로 망원경을 돌린 과학자가 바로 마르텐 슈미트였다.
슈미트 역시 3C273의 스펙트럼 앞에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1963년 2월 5일, 그는 스펙트럼 속 방출선에서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선 사이 간격이 수소의 방출선 간격과 똑같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슈미트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그간 고민하던 스펙트럼의 정체는 수소 방출선이었고 단지 붉은색 파장 쪽으로 어마어마하게 이동했다는 점이었다. ( 이렇게 붉은색 파장 쪽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적색편이라고 부른다. ) 계산 끝에 나타난 결론은 간단했다. 이 천체는 빛의 속도에 약 16%의 속력으로 지구에서 멀어지는 중이었다. 그리고 천체까지의 거리는 무려 20억 광년을 넘어갔다.
‘와, 엄청나게 멀리 있는 특이한 천체를 발견했구나.’라고 끝내기에는 이상한 점이 많았다. 무엇보다 천체의 밝기가 문제였다. 20억 광년이 넘을 정도로 먼 거리에 있는 천체가 일반 별과 다르지 않게 보인다? 이 천체의 실제 밝기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 발견이 있을 당시 슈미트가 연구하던 칼텍에는 3C48을 연구하던 제시 그린스타인도 재직 중이었다. 3C48의 스펙트럼을 플루토늄같은 무거운 금속으로 해석했던 그린스타인은 슈미트의 연구 결과에 충격을 받고 만다. 자신이 연구하던 천체를 다시 확인한 결과 플루토늄은커녕 무려 37%가 넘는 적색편이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초기 연구자들은 이 천체들에게 준항성 전파원(Quasi-Stellar radio source)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 후 1964년, 준항성 전파원이라는 긴 이름은 NASA의 천체물리학자 홍이 치우가 줄여 부르면서 대체되었다. 우리는 지금 이 천체들을 퀘이사(Quasar)라고 부른다.
슈미트의 퀘이사 발견은 단순히 멀리 있는 엄청 밝은 천체로 끝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관측 가능한 우주의 크기와 관측 범위를 매우 크게 확장시켰다. 20억 광년을 넘어 100억 광년을 훌쩍 뛰어넘는 퀘이사의 거리는 그야말로 우주의 과거를 보여주고 있었다. 당장 3C273만 해도 20억 광년 떨어져 있다는 것은 20억 년 전의 빛이 다가온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퀘이사를 연구하면 할수록 우주의 초기 모습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체 불명의 천체인 퀘이사는 1970년대 블랙홀의 존재가 증명되면서 그 비밀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초거대 블랙홀이 수많은 물질을 빨아들이고 그 바깥 물질들이 회전하면서 매우 강한 빛을 내는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게된 것이다. 이처럼 우주 초기 블랙홀인 퀘이사 연구는 블랙홀의 구조 뿐 아니라 은하 진화 이론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어떤 방식으로 블랙홀이 진화했고 지금은 왜 퀘이사가 가까운 주변에 보이지 않는지에 관한 내용은 여전히 활발히 연구되는 주제이기도 하다.
현재 발견된 것 중 가장 멀리 있는 퀘이사는 2017년에 발견된 ULAS J1342 + 0928이다. 이 퀘이사는 빅뱅 이후 약 6억 9천만 년 뒤의 빛을 우리에게 보내주고 있다. 이처럼 현재 퀘이사를 통해 학자들은 우주의 처음을 향해 한 발짝씩 다가가고 있다. 마르텐 슈미트가 스펙트럼 선을 옆으로 옮겨본 것으로 시작된 나비효과가 아주 크게 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주에서는 수많은 빛이 과거를 안고서 우리에게 쏟아지고 있다. 어쩌면 천문학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수많은 ‘과거’를 연구하는 고고학이 아닐까.
참고 문헌
1. The discovery of quasars – KI Kellermann
https://adsabs.harvard.edu/full/2013BASI…41….1K
2. http://scihi.org/alan-sandage-quasar
3. https://www.independent.co.uk/news/obituaries/allan-sandage-astronomer-widely-acknowledged-as-among-the-most-outstanding-of-the-20th-century-2140189.html
4. https://www.caltech.edu/about/news/fifty-years-quasars-38937
5. https://earthsky.org/space/this-date-in-science-maartin-schmidt-discovers-first-known-quasar/
6. https://www.lindahall.org/maarten-schmidt/
7. 오레오 쿠키를 먹는 사람들 – 리처드 프레스턴
8. 웰컴 투더 유니버스 – 닐 디그레스 타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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