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블리즈 – Destiny(나의 지구)
아이돌 노래 중 천문학적 고증과 관련해 가장 유명한 곡이 아닐까 싶다. 짝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태양과 지구와 달로 비유한 멋진 가사가 일품이다.
너는 내 Destiny
고개를 돌릴 수가 없어 난 너만 보잖아
너는 내 Destiny 떠날 수 없어 난
넌 나의 지구야 내 하루의 중심
특히 이 노래 속에서 달로 표현된 화자의 마음을 드러내는 도구는 동주기 자전이다. 실제로 달은 자전 주기와 공전 주기가 같아 매번 지구에 동일한 면만 보여주고 있다. 지구가 태양을 돌고 달이 지구를 도는 간단한 상황에 동주기 자전을 섞었더니 이보다 더 슬플 수 없는 짝사랑 이야기로 재탄생한 것이다. 이 외에 가사 속에는 조석 간만의 차이, 달의 자전주기, 지구의 기울어진 자전축 등 너무나 많은 과학적 사실을 아름답게 풀어내고 있다. 거기에 실제로 달은 조금씩 지구에서 멀어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루어질 수 없는 짝사랑의 결말을 보여주는 것 같아 더 감정 이입이 되는 노래이다.
토이 – 나는 달
어쩌면 달이 지구를 보면서 돌고 있다는 사실이 많은 작사가에게 슬픈 감정을 전해주는 게 아닐까 싶다. 토이 6집 Thank You 앨범에 실린 수록곡 ‘나는 달’ 역시 달에 비유된 화자의 감정을 보여준다.
그대가 바라보는 태양이
너무 밝아 내 사랑은
밤새도록 모르지
하루 종일 빙글빙글
주위를 맴돌아도 난 좋아
기나 긴 시간 변함없는
내 영원한 사랑아
이 노래 역시 동주기 자전의 내용이 포함되고 강한 태양 빛으로 인해 관심받지 못하는 불쌍한 달의 모습이 보여진다. 아이러니한 점은 지구를 짝사랑한다는 달의 유력한 탄생설은 충돌설이라는 것이다. 짝사랑하는 대상에 거대한 충격을 가해 만들어진 달이라면 그 죄를 용서받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넬 – 백색왜성
백색왜성은 밴드 넬의 대표곡으로 2004년 정규 2집에 수록되어 있다. 백색왜성은 실제로는 태양 정도 질량의 별이 죽어서 생기는 천체이다. 아주 뜨겁지만 천천히 식어가면서 언젠가는 그 색조차 사라지게 될 별의 시체라 볼 수 있다.
모두 망쳐버렸어
모두 사라져버렸어
더 이상은 눈부시게 빛날 수가 없어
난 잘못돼 버렸다고
부서져 버렸다고
다신 나의 별로 돌아갈 수 없다고
노래 속에서는 더는 별이 아니게 된 모습을 슬프게 표현하고 있다. 사실 백색왜성 자체는 그 뜨거운 온도 덕분에 하얗게 빛나고 있다. 단지 크기가 작고 핵융합 반응을 할 수 없기에 다시 별일 때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노래에서 돌아갈 수 없는 나의 별은 실제 별이 아니라 자신이 추억하는 어느 시점이나 장소를 비유한 것이 아닐까.
이승환 – 10억 광년의 신호
10억 광년의 신호는 2016년 발매한 노래로 이후 2019년에 나온 정규 12집에 수록된다. 역시 제목부터 굉장히 천문학적 냄새를 풍기고 있다.
나는 너를 공전하던 별
무던히도 차갑고 무심하게
널 밀어내며 돌던 별
너는 엄마와 같은 우주
무한한 중력으로
날 끌어안아 주었지
네 마지막 신호 불안하게
뒤섞여 끊어지던 파동의 끝자락
‘불안하게 날아오는 10억 광년의 신호’는 실제로 존재한다. 마침 노래가 발매한 2016년에 발견된 중력파다. 발견된 중력파는 약 13억 광년 거리에서 생긴 블랙홀 충돌로 인해 발생했다. 비록 별이 보내온 신호는 아니었지만 그 멀고 먼 10억 광년 이상의 거리에서도 지구에게 많은 신호가 전해져 오는 것이다. 노래에서는 그리움을 이 신호로 표현하고 있지만 그 대상이 실제 존재한다는 사실은 상당히 신경을 쓴 가사라는 점을 보여준다.
볼빨간 사춘기 – 우주를 줄게
2016년 발매한 볼빨간 사춘기의 정규 1집 타이틀 곡이다. 워낙 유명한 곡인데 지금까지 소개한 노래들이 슬픈 감정에 집중했다면 이 노래는 멜로디부터가 밝고 화사하다.
어제는 내가 기분이 참 좋아서
지나간 행성에다가 그대 이름 새겨 놓았죠
한참 뒤에 별빛이 내리면
그 별이 가장 밝게 빛나요
문학적 허용이라고 할까? 많은 사람이 혼동하여 쓰는 행성과 항성의 차이가 이 노래의 가사에서도 드러난다. 분명 행성에 이름을 새겨놨는데 갑자기 별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행성이라는 단어보다 별이라는 단어가 더 마음에 들었을 수도 있겠다. 이 노래는 하늘만큼 땅만큼을 뛰어넘어 우주만큼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는 세레나데이니 사실 천문학적 고증같은 것이 뭐가 중요할까 싶기도 하다.
여러 노래 속에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천문학은 현대 과학의 최전선에 서 있는 학문이기도 하지만 여러 문학적 요소를 품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에게 우주가 전해주는 신비로움, 경외감 같은 것들이 가장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과학적 사실 그대로 비유하여 아름답게 풀어낸 가사면 물론 가장 좋겠지만 사람의 마음을 담아내는 문학적 창작인 만큼 약간의 너그러움을 가지고 조금의 오류는 시적 허용으로 눈감아 줄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도 좀 더 많은 노래에서 천문학과 우주라는 소재가 인간의 마음을 치유해주는 좋은 도구로 쓰여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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