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인 2006년 8월 24일. 국제천문연맹(IAU)은 투표 끝에 명왕성을 행성의 지위에서 왜행성으로 강등시킨다. 마침 NASA에서 당해 1월, 명왕성 탐사선인 뉴호라이즌스를 발사했던 터라 이 결정은 미국 과학계 및 대중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그 이후 현재까지도 명왕성은 비운의 행성. 과학자들의 외면을 받은 태양계의 막내 등 다양한 이미지로 재생산되고 있다. 과연 행성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길래 과학계와 대중에게 명왕성의 행성퇴출이 큰 이슈가 되었던 것일까.
명왕성이 사람들, 특히 미국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것은 발견자가 미국인이기 때문이다. 1930년, 당시 24살의 톰보는 사진 건판 속 작은 차이점을 집요하게 비교하면서 명왕성 최초 발견자의 칭호를 얻게된다. 발견 당시에는 지구 정도의 크기로 추정된 바 당연히 행성으로 취급받았고 추후 발견된 위성들로 인해 그 지위는 더욱 공고해졌다. 9개의 행성 중 유일하게 자국민이 발견한 행성이자 태양계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많은 부분이 알려지지 못한 명왕성은 인기를 얻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명왕성은 발견 이후로 여러 문제점만 추가되기 시작했다. 관측 기술이 발전하면서 최초 지구 정도로 추정되던 명왕성의 크기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고(달보다 작아졌다.) 행성 지위에 도움을 주었던 명왕성의 위성 카론은 그 무게가 명왕성을 위협할 정도로 크다고 밝혀졌다. 명왕성의 궤도와 구성 성분 역시 그동안 알려진 다른 8개 행성과 매우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어 그 정체에 관한 의문이 계속되는 상황이었다.
그 의문에 쐐기를 박은 것은 1990년대부터 시작된 카이퍼벨트 천체들의 발견이었다. 특이하다고 생각한 명왕성의 궤도가 수많은 카이퍼벨트 천체들의 궤도와 비슷하다는 점, 발견된 천체들의 질량과 크기가 명왕성을 위협하고 있다는 점은 명왕성이 ‘특별한 행성’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심어주고 있었다. 이처럼 위태위태하던 명왕성에게 날아온 카운터펀치는 2005년 마이클 브라운 박사팀이 발표한 ‘에리스’였다.
이미 많은 수의 카이퍼 벨트 천체를 찾았던 브라운 박사팀은 에리스를 발견하고(당시에는 ‘제나’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그 질량과 크기가 모두 명왕성보다 크다는 것을 알렸다.(현재는 크기가 명왕성보다는 조금 작은 것으로 변경되었다.) 그동안 간신히 카이퍼 벨트 중 가장 큰 천체로 명맥을 유지하던 명왕성에게는 날벼락이 떨어진 것이었다. 과학자들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에리스를 행성으로 인정할 것인지 말 것인지. 인정하면 이와 비슷한 천체들이 단체로 행성 지위를 받아야 했고 인정하지 않으면 명왕성이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처럼 그저 새로운 천체를 발견하고 분류해야 하는 일이 과학자들에게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해야 하는 어려운 숙제로 변하고 말았다.
과연 ‘행성’은 무엇인가? 그동안 관념적으로 생각해 온 행성에는 특별한 정의가 없었다. 과학이라는 틀뿐 아니라 대중적으로 훨씬 넓게 인지되어 온 행성은 막연하게 태양계에서 태양 다음의 지위를 가진 존재로 여겨져 왔다. 우리에게 ‘중요하고 대단한’ 존재처럼 여겨졌던 행성이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수천 년이 지나서야 제대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2006년 IAU 회의를 바라보는 외부 시각은 명왕성의 거취 결정이었지만 그 근본은 ‘행성’이 무엇인지 결정하는 것이 되었다.
회의를 통해 정해진 행성의 조건은 3가지였다. 첫 번째는 태양 주위를 돌아야 한다. 두 번째는 충분한 질량을 가지고 있어 중력적으로 구형의 모양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사실 이 부분까지는 새로 발견된 천체들도, 명왕성도 조건을 만족한다. 문제는 마지막 세 번째 조건이었다. ‘has cleared the neighbourhood around its orbit.’ 자기 궤도에서 지배적인 존재여야 한다! 명왕성과 카이퍼 궤도 천체들은 서로가 서로의 약점이 되었다. 특히나 명왕성의 경우 자신과 비슷한 질량을 가진 위성, 카론의 존재가 가장 큰 문제였다. 막연히 명왕성 주변을 카론이 공전한다기보다 서로가 질량중심점을 기준으로 함께 회전하고 있었다. 이는 세 번째 조건을 절대 만족할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이로 인해 우리는 행성을 수십 수백 개에서 단 8개로 줄일 수 있었던 것이다.
과학적 용어를 정의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자를 대고 길이 순으로 나눌 수도 없는 노릇이고 몸무게를 기준으로 칼같이 자르는 것도 논란의 여지만 만들 수 있다. 그동안 과학자들조차 큰 고민없이 사용하던 행성이라는 단어에 제한을 두면서 더 체계적으로 학습하고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쪽도 있지만 반대로 지금 정해진 정의도 정확하지도 않고 어차피 사람이 만드는 용어인데 행성 개수가 많이 늘어나서 문제 될 것이 있냐는 의견도 있었다. 이런 결말과 관계없이 2006년 8월에 벌어진 이 사건은 단순히 명왕성의 비극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행성, 더 나아가 우리 태양계 속 구성원들에게 깊은 생각을 하게 한 지표가 되었다. 과연 우리는 지구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이 ‘행성’ 들에 대해서 잘 알고는 있는 것일까? 이 단어 하나로 우리는 태양계 천체들을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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